조선시대 일기류의 기상일지(氣象日誌)적 재구성과 고종일기의 기상기록 분석
Abstract
First half of my article focused on analyzing the current state of historical materials regarding weather and climate, and established a list of weather-related historical literature collection of Korea with which to make a lexical approach to the situations of all kinds of weather literature. It also put emphasis on gathering information and data of weather logs from journal-type historical records which were contained in 48 weather-related journals of Choseon period.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are expected to be useful for the activation of study in historical meteorology. The latter half of my research focused on analyzing various meteorological states of sunny, cloudy, rainy, snowy and frosty weather which were recorded in the official Annals of King Kojong (1864~1907). And it re-verified historical rainfall data of preceding researches of Wada Yuji (1917), Jung-Lim (1994), Jhun-Moon (1997). In result, different records were found between data of theirs and mine. It means that we have to analyze and reconstruct newly the meteorological data of the Annals of King Gojong and the Daily Records of Royal Sungjungwon (1623~1910) during the late Choseon period.
Keywords:
Historical meteorology, meteorological contents, journal of weather logs, rainfall records of the Annals of King Gojong1. 서 론
기상기후의 문제는 인류역사의 태동과 더불어 일상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통일신라시대의 누각전(漏刻典)을 비롯하여 고려의 서운관(書雲觀)과 조선의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국가 전문기관의 설치를 통해 천문과 기상을 관측하고 관련된 자료를 남겼다.
그런데 기상학 분야는 근대학문에 이르러 비로소 독립된 분과로 성장하였고, 전통시대에는 천문학 범주 속에 포괄되었던 까닭에, 기상 자체를 주제로 삼는 문헌의 성립이나 관점의 수립이 활발하지 못하였던 한계가 있다.1)
이에 본인은 전통시대에 기능하였던 ‘역사기상학’이란 범주와 관점의 수립을 위해 최근 몇 년간 자료 개발에 집중하였고, 특히 조선시대 류서류와 농서류 문헌을 통해 기상현상을 어떻게 관찰하고 설명하였는가를 고찰하는 ‘기상자연학’의 방법론을 구축하려 노력하였다.2)
그 일환으로 조선시대 저작물로서 류서류 문헌 148종과 농서류 52종을 합한 200종의 문헌을 조사하였고, 이 중 기상기후 관련 내용을 보다 직접적으로 수록한 조선시대 고문헌 31종을 개발하였다(류서류 20종, 농서류 11종). 이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분석을 겸한 해제목록집을 구축하였고, 나아가 각각에 대해 가장 양호한 판본의 원문을 수록한 원전집성집을 구축하였다.3)
거시적 관측이나 장비가 부족하였던 전근대사회지만, 이 자료물을 통해 역사기상학에 관한 단편 자료를 집성하고 재해석하는 일은 한반도 자체의 장기적 기후 변동의 역사지표로 활용할 수가 있고, 넓게는 동일한 동아시아 지역권인 중국과 일본 등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한반도적 기후특성을 탐색하는 역사적 거시지표로 기능하는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이처럼 역사적 기상기후 주제연구는 날씨와 바람, 가뭄과 재해 등 전근대 일상생활과 사회생업 기반의 변화를 짚어볼 수 있는 한국학의 주요 연구분야이며, 인류 보편의 기상기후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분야이다.
한국의 역사자료물 중에는 매일의 기상현상을 관찰한 기록물이 적지 않아 세계사적 의의가 전망되지만 그 자료의 전반적인 면모를 구축하고 분석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다.4) 이는 역사기상학 분야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융합연구 기반으로 접근되는 성격에 기인함이 일차적이라 하겠다.5)
이를 위해 필자는 매일의 기상상태를 수록한 기상 일지적 기록물로서 일기류 문헌을 주목하여 검토하였으며, 본고는 이에 대한 논의이다. 일기류 문헌은 아래 본문에서 다룬 바와 같이 국정일기, 사행일기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 중에서 주기적인 날씨 기록이 담긴 기상일기류는 조사결과 47종으로 추산되었다. 이를 ‘기상일지 일기류’로 칭할 만하다. 시기상 오래된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였던 남해안의 7년간 기상정보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전통지식’에 대한 보존과 연구가 새로운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바,6) 역사기상학 분야에 대한 전통지식 범주와 컨텐츠 개발 역시 그 필요성과 시의성이 매우 높은 영역이다. 본고에서 다루는 기상일지 일기류 연구는 이에 부응하는 일환이기도 하거니와 장기적으로 우리 한반도 기상기후의 거시적 변동 기반 구축 및 기상역사물의 자료 개발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7)
2. 조선시대 일기자료의 종류와 기상일지 기록물 검토
2.1 기상일지 성격의 일기류 기록물
기상역사 자료는 크게 연대기물과 편집물로 나눌 수 있고, 전자의 연대기물은 주지하듯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고려사』「오행지」,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를 일컬으며, 후자의 편집물은 여말선초부터 특히 조선 후반기에 기관이나 개인이 나름의 목적을 갖고 다량으로 편찬한 고문헌 문집류를 지칭한다.
이 문집류는 다시 자료형태와 성격에 따라 구분하자면, 첫째, 문물전장백과전서 성격의 류서류 문헌이 있다. 류서류는 만물에 대한 모든 관심을 다룬다는 관점이 있기에 이 중에 천문기상학 관련 자료가 수록되었고, 이를 통해 조선시대 학인들의 기상학 인식과 면모를 읽을 수가 있다.
둘째는 전통 농업사회의 필요에 따른 농서류 문헌인데, 농사 경영에 필수적인 기상기후의 관측과 예보에 관한 각종 정보들을 수록한다는 특성이 있어 역시 기상역사물 구성에 중요한 장르가 된다. 이들 농서류 중에는 『사시찬요』와 같이 1년 열두달 혹은 24절기와 72절후 관점에서 기상변화를 다룬 월령류 자료도 대폭 포함되어 있어, 계절별 절기별 변화에 관한 기상지식은 이러한 월령류 문헌을 통해 접근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어 이를 별도로 독립할 만하다.
셋째, 고문헌 중에는 개인이 매일 또는 일정한 간격으로 자신이 거처한 곳의 날씨 정보를 기록한 일기류 문헌이 발달하여 있다. 관측일지가 없던 전근대시대의 기상 변화나 기후 변동 문제를 엿보는 중요한 통로로 주목되는 것이다. 이상의 자료 범주 중에서 본고가 주목하는 바는 바로 기상일지 성격의 일기류 문헌이다.8)
일기류 종류는 형식상 일상의 신변잡기를 적은 것들을 비롯하여 연행사나 통신사 등을 수행하면서 남긴 공무적 성격의 일기류가 있으며, 또한 임진왜란과 같이 전쟁의 와중에 전황과 더불어 날씨 정보를 기록한 전쟁 일기류에서도 기상관련 역사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일기류 문헌은 선행 연구에 따르면 다음의 13분류로 가름된다.9)
<일기류의 수록 내용 성격에 따른 분류>
- - 국정일기(國政日記) : 조정의 통치 사항이나 국왕의 일상사를 기록한 일기
- - 여행일기(旅行日記) : 여행이나 기행의 여정과 감상을 정리한 일기
- - 사행일기(使行日記) : 사신으로 외국을 왕래하면서 경험한 바를 정리한 일기
- - 피란일기(避亂日記) : 전란으로 피난생활을 하면서 겪은 고초를 기록한 일기
- - 진중일기(陣中日記) : 전란의 와중에서 전투에 직접 참가한 인물의 일기
- - 사환일기(仕宦日記) : 관직 생활에서의 체험과 활동을 기록한 일기
- - 농사일기(農事日記) : 농업경영에 관련된 주요 사항을 기록한 일기
- - 문학일기(文學日記) : 필자가 작성한 시문을 주로 수록한 일기
- - 표류일기(漂流日記) : 외국에 표류되었을 때의 경험을 수록한 일기
- - 토벌일기(討伐日記) : 민란이나 병란을 토벌하는 경과를 기술한 일기
- - 궁중일기(宮中日記) : 궁중 관련 생활을 기록한 일기
- - 추국일기(推鞫日記) : 죄인을 추국하면서 그 전말을 쓴 일기
- - 유배일기(流配日記) : 유배생활의 나날을 담은 일기
이상 분류 중에서 날씨정보를 기록한 일기류는 사행일기와 전란일기가 대표적이며, 몇몇 사환일기와 궁중일기에서도 날씨기록이 확인된다. 여기에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는 매우 장기간의 날씨정보를 기록한 소중한 역사유산이다. 사행일기는 중국사신으로 다녀온 연행(燕行)일기와 일본사신으로 다녀온 해행(海行)일기로 대별되며, 매우 많은 문헌이 남아있다. 이들 자료는 각각의 분량이 방대하여 자료 구축과 분석에 어려움이 커서 아직 이들 자료를 대상으로 날씨정보를 추출한 연구는 없다.
한국기상역사 연구의 일환으로 필자가 조선조 일기류 자료를 검토한 결과, “사행일기(연행과 해행), 전란일기, 사환일기, 궁중일기, 국정일기” 범주에서 기상기록이 집중되어 나타났다.
각 범주별 일기류 문집은 다시 많게는 수십 종의 문헌이 유의미한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시기별로 연행일기는 『표해록』(1488)에서 『몽경당일사』(1855)까지 17종, 해행일기는 『일본왕환일기』(1596)에서『동사만록』(1884)까지 21종, 전란일기는 『난중잡록』 (1582)에서 『난중속잡록』(1638)까지 4종, 사환일기는『조천일기』(1577)에서 『하재일기』(1911)에 이르는 4종, 궁중일기는 『계갑일록』(1584) 1종으로 총 47종으로 집계되었으며, 그 외 국정일기로 고전번역원에서 번역 DB를 공개하고 있는 『인조승정원일기』와 『고종승정원일기』의 2종을 별도로 추가 검토하였다. 이렇게 살펴본 일기류 문헌은 총 49종에 달한다.
이들을 일일이 검토한 뒤, 주로 매일 날씨를 기록한 일일 일기류를 선별하였다. 『승정원일기』 2종은 매우 방대한 분량이며, 연행일기는 『열하일기』를 제외한 16종을 완료하였고, 해행일기는 21종 전부를 분석하였고, 전란일기는 검토하였으나 일자가 불분명한 3종을 제외하고 『난중일기』 1종을 분석하였으며, 사환일기는 분량이 매우 많은 『하재일기』를 포함한 4종을 분석하였고, 궁중일기는 1종을 분석 완료하였다. 이렇게 하여 기상정보로서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총 42종 일기류 문헌을 직접 분석하고 날씨정보를 추출하였다. 대상 자료는 고전번역원 및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하였다. 일기류 중에서 기상 정보적 가치가 있는 이러한 자료물은 본고에서 별도로 범주화하여 ‘기상일지 일기류’ 문헌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들 기상관찰지 성격의 기상일지 일기류 목록을 <Table1~6. Diary literatures lists related weather’s log duing Choseon dyansty period; 조선시대 기상일지 일기류의 종류별 목록>으로 정리하여 첨부한다.
2.2 기상일지 일기류의 기상기록 기간 검토
조선조 일기류 문집 47종을 살펴보면, 대부분 매일 날씨를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매일 기상일지 자료로 활용할 수가 있다. 기록한 기간을 검토할 때, 연행일 기류는 최소 4개월~최장 15개월에 걸치고, 이들 17종의 기간을 모두 합하면 108개월, 곧 9년치 분량에 달하며, 평균 6.35개월간 매일 기록한 꼴로 산출된다. 이 6.35개월은 중국 연경으로 사행을 다녀오는 데 걸린 평균 왕복시간이기도 하다.
다음 해행일기류는 최소 3개월~최장 12개월에 걸치며, 21종의 기간을 합하면 139개월(11.6년) 분량에 달하고, 평균 6.62개월이 소요되었다. 일본으로의 사행 기간이 연행사보다 조금 길지만 차이가 크지는 않다.
다음 전란일기 중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난중일기』(1592~1598)는 단일 일기로서 매우 긴 근 7년간에 달하고, 그 기록 주기가 매일이라는 점에서 기상일지로서 가치가 매우 높으며, 임진왜란(1592~98)의 주 무대가 남해안 일대여서 이 지역의 기상역사정보로서 활용도가 크게 발생한다.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의『난중잡록』(1582~1610)은 무려 29년간 기록한 것이나 기록 주기가 년 1, 2회에 불과하고 일자도 불명하여 활용도가 낮은 편이나, 그 내용이 임진왜란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난중일기』의 기상정보와 대조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할 수가 있다. 조경남은 또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기록한 『속잡록』(1611~1638)도 남기고 있는데, 역시 일자가 불명한 한계가 있다. 정경운(鄭慶雲, 孤臺, 1556~?)의 『고대일록(孤臺日錄)』(1592~1609)은 장장 17년간을 기록하였다. 기록 주기가 비록 월 1, 2회이지만, 역시 임진왜란 기간을 포함하고 있어, 『난중일기』의 보완 자료가 될 수 있다.
다음 조선 중기 선조연간 왕조의 정치기사를 엮은 우성전(禹性傳, 1542~1593)의 『계갑일록』(1583~1584)은 궁중일기류에 속하는데, 1년 2개월간 매일 기상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관직생활의 일기를 기록한 사환일기는 김성일(金成一, 1538~1593)의 『학봉일고』(권3)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장관으로서 명나라 연행을 다녀오면서 노정을 기록한 『조천일기(朝天日記)』와 귀향할 때 쓴 『기묘일기』, 함경도 순무어사를 수행하면서 기록한 『북정일록(北征日錄)』, 황해도 순무어사로 민간을 순행하면서 읊은 시를 모은 『해서록(海西錄)』, 나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만 3년간 현지 생활을 그린 『금성록(錦城錄)』, 일본 통신부사로 다녀오면서 적은 『해사록(海錄)』, 사관(史官)으로 재직시 초록한 『경연일기(經筵日記)』 등 다양한 일기서를 남겼다. 이들 중 『조천일기』(1577.2~6월)와 『기묘일기~(1579.1~6월) 및『북정일록』(1579~1580)에서 16개월간 매일 기록한 기상일지를 읽을 수 있다.
근대 개화시기 공인으로서 일기를 남긴 지규식(池圭植)의 『하재일기』(1891~1911)는 그 기록기간이 21년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자료라 하겠으며, 매일의 기상정보를 기록한 것이어서 20세기 전후 날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일기물이다.
2.3 일기류편 기상기록 시기 검토
이상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일기를 남겼지만 그 기록시기를 검토하다보면, 서로 중복되거나 연접되는 상황이 보이기도 하여 이들을 합쳤을 때 좀 더 장기적인 기상일지로 연장하여 활용할 수가 있다.
시기상 순서를 잡으면, 김성일의 『조천일기』가 1577년 2~6월, 『기묘일기』가 1579년 1~6월, 『북정일록』이 1579년 9월~1580년 4월까지이고, 이어서 우성전의 『계갑일록』이 1583년 6월~1584년 8월까지이며, 『난중일기』가 1592년 1월 1일~1598년 11월 17일까지, 정경운의 『고대일록』이 1592년 4월 23일~1609년 10월 7일까지이다. 이처럼 임진왜란 전후 40년간 기상기록이 모아진다.
한편 이경직(1577~1640)의 『부상록』과 오윤겸(1559~1636)의 『동사상일록』은 1617년 7월 4일~10월 18일까지 동일한 기간에 대한 일본 사행기록이며, 황호(1604~1656)의 『동사록』과 임광(1579~1644)의 『병자일본일기』도 동일한 기간인 1636년 10월 6일~1637년 2월 25일까지의 기상기록이다. 숙종 38년 연행일기인 최덕중(미상)의 『연행록』과 김창업(1658~1721)의 『연행일기』도 1712년 11월~1713년 3월 30일까지 동일한 지역에 동일한 기간의 기록물이다. 시기가 동일한 이런 경우는 날씨 관찰의 관점이 같은지 어떤지 여부를 대조할 수가 있다.
아래 <기상일지 일기류 문집의 시기별 일람표>(Table 7)는 필자가 조사한 일기류의 수록 시기를 기준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기록기간을 모두 합하면 총 124.5년 분량에 해당한다. 매일 날씨 기록을 조선시대 학인들이 이만큼 남겼다는 것은 놀랍고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차후에 이 일기류편 기상기록을 재구성하고 분석하여 역사적 기상일지로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린다.
본 연구로 작성한 일기류 기상일지 분량은 난중일기 A4 74쪽, 연행일기 114쪽, 해행일기 176쪽, 학봉일고 22쪽, 계갑일록 24쪽, 하재일기 229쪽으로 총 639쪽에 달한다. 이들 문집류의 47종 일기류 외에 본고에서 추가로 다룬 고종승정원일기(1864~1907)는 44년간의 기상일지물이며, 국왕일기라는 특성상 자료 충실도가 높은 편에 속하여, 이를 정리한 분량이 무려 A4 575쪽이다. 모두 A4 1,214쪽이라는 너무 많은 분량이어서 본고의 이 작은 논문에다 수록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이렇게 국정일기인 고종일기까지 합하여 모두 48종의 기상일지 일기류의 내역을 시기순으로 정리하면 <Table 7>과 같다.10)
3. 고종일기의 기상기록 특성과 측우량 기록 상황
국정일기로서 『승정원일기』는 개국초부터 작성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인조 원년(1623)부터 순조 융희 4년(1910) 8월까지 287년간 3,243책이 전하고 있다.11) 국사편찬위원회는 규장각 소장의『승정원일기』(국보 제303호) 필사본을 1960년~1977년까지 해서(楷書)로 탈초영인본(141책)을 간행하였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0년 이후 2014년까지 이를 디지털화한 원문 텍스트를 한국고전번역원과 연계하여 웹서비스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근대 직전의 44년간 기상일지를 기록한『고종승정원일기』(1864년 1월~1907년 6월)를 대상으로 기상기록의 특성을 분석하였다.12) 단, 1907년은 6개월 기록만 있어서 통계처리에서는 제외하였다.
이와 관련한 선행연구로 일제시기 와다 유지(1917)가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측우기록의 기상학적 통계분석에 집중한 성과가 돋보이며, 특히 측우기의 복원 시행으로 기록을 재개한 영조 46년(1770)부터 근대관측으로 바뀌기 전인 고종 44년(1907)까지 세계 최장시간 연속 강우기록을 보이는 한양의 138년간(1770~1907) 강우량 변동분석에 초점을 두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서 현대기상학계는 근현대 기상관측 데이터와 연속하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통계분석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측우기록의 기상학적 우수성과 정밀성을 드러내는 논지를 발표하였다. 정현숙 · 임규호(1994), 전종갑 · 문병권(1997)의 『한국기상학회지』 수록 논문은 이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성과이다. 본고는 이들과 또 다른 관점에서 『고종일기』가 지닌 기상일지적 특성을 고찰하여, 조선시대 일기류 기록물이 지닌 역사기상학적 의의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기상기록의 분석에 앞서 기록의 형태를 보면, 첫째, 날씨 표기가 『승정원일기』의 매일 첫 상단부에 맑음(晴), 흐림(陰), 비(雨), 눈(雪), 안개(霧), 서리(霜), 우박(雹), 우뢰(雷), 혹은 흐리고 맑음(或陰或晴) 등으로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다만, 기상기록이 목적이 아니라서 그런지 기상변화를 자세한 정보로 기록하지는 않았고, 그 기상정보 전체를 재구성하여 일별할 때 맑고 흐리고 비오는 세 가지 날씨(晴陰雨)의 기록에 가장 집중한 특성을 보인다.
둘째, 이 청음우(晴陰雨)의 3종 기상 외에 많이 기록된 것으로는 눈과 서리가 주목되며, 고종 43년 동안 눈이 76회, 서리가 28회로 약간 많은 정도로 기록되었다. 표제 날씨는 맑음이나 본문 기사 중에 눈내린 기록이 있는 경우까지 합한 통계치이다.
아래는 주요 기상현상을 중심으로 『고종일기』의 특성을 살펴본 것이다.
3.1 『고종일기』의 눈 기록
첫째, 그러면 19세기 후반의 43년간(1864~1906) 눈 기록을 살펴보면, 기록이 없는 해가 많으며, 1873년에 9회로 비교적 많은 정도이고, 윤달이 겨울철에 배당되지 않아서 그런지 윤달의 눈 기록은 없다(Table 8). 이 기록을 갖고 월별 분포를 살펴보면, 1년 중 음력월 9월에서 3월까지 분포되며, 빈도는 12월이 20회로 가장 많고, 다음 10월이 17회이고, 다음 1월 15회, 11월 12회이다. 2월과 3월에 눈이 각각 7회와 1회로 기록될 정도로 춘설(春雪) 현상이 관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간 강설의 추이가 그래프상 12월과 10월에서 두 번 피크를 이루는 기상특성을 보여 준다(Fig. 1).
이 때 9월과 10월의 눈 기록은 첫눈 현상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10월이고 드물게 9월에 첫눈이 4건 관측되기도 하였다. 이 4건을 양력일자로 환산하면, 다음처럼 각기 11월 7일, 10일, 2일 및 10월 16일이어서, 양력 날짜로는 11월의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앞의 3건은 모두 윤달이 든 해여서 9월로 밀려서 기록된 것이라 하겠다.
<음력 9월 첫눈 기록>
- • 1881년(고종 18, 신사) 9월 16일(을사) 미시(未時)에 눈이 내렸다. ⇒ 양 1881.11.7.(월)
- • 1884년(고종 21, 갑신) 9월 23일(갑자) 오시(午時)에 눈이 내렸다. ⇒ 양 1884.11.10.(월)
- • 1895년(고종32, 을미) 9월 16일(계축) 4경(更)에 눈이 내렸다. ⇒ 양 1895.11.02.(토)
- • 1899년(고종36, 광무3, 기해) 9월 12일(정사) 인시(寅時)에 눈이 내렸다. ⇒ 양 1899.10.16.(월)
이상의 강설 시기를 현대기상과 비교하는 일환으로 양력일자로 변환하여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11월 강설 기록이 가장 많으며, 이후 1월, 2월, 3월까지 꾸준히 관측 기록되었다(Table 9). 드물게 양력 4월 하순의 강설이 1905년 4월 25일(음 3.18)에 흐리고 진눈깨비가 내렸다는 기록으로 수록하였다. 상대적으로 12월 강설의 빈도가 낮은 특성을 보이는 점이 주목된다(Fig. 2).
3.2 『고종일기』의 서리 기록
둘째, 다음 서리 기록은 표제 날씨로 표기되지는 않았다. 아래 결과는 『고종일기』의 본문 중에 수록된 것을 검토하여 일일이 추출한 것이며 모두 31건을 헤아린다. 이 때 서리 내린 시각을 대부분 표기하였으며, 묘시(卯時, 5~7시) 또는 동틀 무렵 서리내렸다(開東下霜)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기록된 빈도가 1년에 1건씩이고, 그 시기가 8월 혹은 9월이어서 아마도 첫서리 내린 날짜의 관측기록으로 보인다. 음력월로 8월이 10건, 9월이 21건인데, 현대값과 비교하기 위해 양력변환을 하였다(Table 10).
이를 보면, 고종대 첫서리가 양력일자로 대개 10월 3일~25일 사이에 몰려있고, 가장 빠른 해는 1888년의 9월 24일이고, 가장 늦은 해는 1882년의 11월 2일인데, 그 일자의 변동폭은 39일간에 걸친다. 그래프로 그려 평균값을 구하면 평균 양력 10월 14일경에는 첫 서리가 내린 것이라 할 수 있으며, 24절기상 상강(霜降) 절기가 10월 23일 무렵 들어오는 것보다 9일 가량 빠른 것을 보여준다(Fig. 3). 이를 음력월로도 계산해보면, 평균 9월 6일경에는 첫서리가 내렸으며, 가장 빠른 일자가 1906년 8월 17일이고, 늦은 일자가 1889년 9월 28일이다(Fig. 4). 두 그래프의 추이선을 그려보면, 19세기 후반기 동안 지속적으로 서리 시기가 조금씩 빨라지는 경향성을 보이며, 시기상 1860년대에 서리시기가 양력 10월 초순으로 빨랐다가, 1881~1887년 동안은 하순으로 늦어졌으며, 1890년 이후로 다시 중순으로 빨라지는 흐름을 보인다.
셋째, 나머지 기상현상으로 우레 6회, 안개 1회, 우박 2회 등이 있으나, 극히 미미하게 기록하고 있어 역사적 기상정보로서 가치가 낮다. 『고려사』에서 빈번하게 기록되었던 황사 현상은 기록 자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천문기상학의 전문기관인 관상감이 아니라 국왕의 일정 기록을 주목적으로 하는 비전문적인 승정원에서 날씨를 매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여기에는 왕권의 신성성을 일기 조순(調順)과 연계시키는 재이론(災異論)적 정치사상의 영향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데, 날씨 통계를 내본 결과 맑음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데에서 그렇고, 그 반대로 흐림 기록이 극히 적다는 것은 자연의 기상현상을 조순과 불순에 따라 하늘이 왕권의 덕성(德性)을 견책하거나 상벌한다고 보는 전통적 동아시아 천문재이사상이 작용하는 것이라 이를 수가 있다.
『고종일기』에서 기상정보는 맑음이라 표기한 경우에도 본문을 검토하면,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자들이 맑음 날씨가 국왕의 권위를 더 높이는 것이고, 비나 흐림은 낮추는 것이라 인식한 측면이라 할 수가 있다.
3.3 『고종일기』의 흐림 기록
넷째, 그러면 연간 맑음과 흐림 날씨의 기록 상황을 살펴보자.
흐림의 경우, 1년에 흐린 날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은 해가 1867년, 1868년, 1869년, 1875년 등이 있을 정도이고, 흐린 날을 가장 많이 기록한 해가 1898년(윤3) 36일, 1887년(윤4) 34일 등으로 눈에 띈다. 고종대 30년간(1871~1900)의 총 흐림 일수는 311일이어서, 연평균 10.4일 가량만 흐린 날에 불과할 정도록 기록 빈도가 낮다(Table 11, Fig. 5).
반대로 맑음 일수는 30년간 총 8,675일로, 연평균 289.2일이나 된다(Table 12, Fig. 6). 지나치게 맑음이 많은 것이다. 월평균 맑음 일수 통계는 조금 복잡한데, 승정원일기가 음력일자로 기록한 까닭에 2년 내지 3년에 한번씩 윤달이 들며, 이로 인해 1년의 달수가 달라 일률적으로 통계내기 어려우므로 편의상 평년의 해와 윤월년의 해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평년의 경우 월평균 21.9일이 맑음이고(Table 13, Fig. 7), 윤월년의 경우 22.3일이 맑음이다(Table 14, Fig. 8). 이를 평균하면 22.1일이어서, 음력월 29.5일 중 75% 가량에 달한다.
연중 월별 추이를 살펴보면, 맑은 날이 가장 많은 달은 겨울철인 1월과 12월, 2월이며, 가장 적은 달은 여름철인 6월과 7월이다. 평년 6월의 경우 평균 16.2일(55%)이 맑음이어서, 음력월 한달의 절반 가량이 맑지 않음으로 기록되었으며, 현재의 여름철 기상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3.4 『고종일기』의 맑음 기록
다섯째, 고종 30년간의 연간 맑음 일수를 살펴보면, 가장 많았던 해가 1887년(L4) 350일, 1892년(L6) 341일, 1876년(L5) 338일의 순이다(Table 12, Fig. 6). 이 3개년이 모두 윤달이 든 해라서 많기도 하지만, 1개월치를 빼더라도 연평균 289.2일보다 19~31일 가량 더 많은 수치이다.
반면에, 맑음이 가장 적은 해는 1894년 202일이고, 다음이 1882년 225일이다. 그런데 이 두 해에는 날씨 기록이 없는 달이 있어 통계상 신뢰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제외하고 다시 검토하면, 1897년 249일이 가장 적고, 1877년 259일이 그 다음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평균을 밑도는 해를 따로 뽑아 월별 통계와 분포를 살펴보면, 음력월 6월을 전후한 5, 6, 7월의 3개월간 맑은 날이 각각 19.7일, 15.7일, 18.5일로 매우 낮다(Fig. 9). 특히 1874년의 경우 맑은 날이 6월이 불과 9일이고 5월이 15일이며, 1877년의 경우 5월이 9일, 6월이 15일에 지나지 않는다(Table 15).
맑은 날이 적다는 것은 비나 흐린 날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이 측면을 검토하기 위해 1874년과 1877년의 월별 청음우(晴陰雨) 대비 그래프를 작성하였다(Figs. 10, 11). 1874년은 비가 5월에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6월, 7월 순이었으며, 흐린 날은 6월에 가장 많았다. 1877년 역시 비가 5월부터 6, 7월 순서로 가장 많았으며, 또한 흐린 날도 5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 같은 통계치가 보여주는 의미에 따라, 이들 두 해에 냉해나 수해 등 기상이변으로 작황이 나빠졌는지 향후 사회역학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 이 문제는 별도의 자료 수집을 요하므로 후일의 연구로 돌린다.
이상과 같이 고종연간의 기상정보 분석은 당시의 날씨 상황을 들여다보는 유용한 기상 데이터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며, 이 기상변동과 더불어 당시의 사회 변동 문제도 함께 분석한다면 이 시기의 사회와 농사의 변화 측면을 더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5 『고종일기』의 비 기록과 연간 강우일수
여섯째, 맑음에 대조되는 기상현상으로 비가 있다.『고종일기』는 비의 기록과 더불어 그 때의 강우량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상당히 공력을 쏟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측우기의 발달과 일상화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측면이어서 한국 기상학역사정보로서 돋보이는 부분이다.13)
그러면 고종연간 비 기록의 상황을 먼저 살펴본다. 기록이 없는 달도 있어 일률적 통계 분석에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이 시기의 대체적 강우 경향성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고종 30년간(1871~1900) 연간 강우 일수와 추이를 분석하면, 연평균 48.8일간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고, 그래프 변동의 추이상 1871년에서 1881년까지 11년간은 연평균 61.6일로 평균보다 12.8일 더 내린 시기인 반면에, 1882년부터 1895년까지 14년간은 40.4일간으로 평균보다 8.4일간 적게 내린 시기로 나타났다(Table 16, Fig. 12). 곧 1870년대는 비가 매우 많았다가 1880~90년대는 상당히 적게 내린 건조기 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 강우 일수의 고저값이 당시 작황에 영향을 어떻게 끼쳤는지는 앞으로 역사적 자료의 사회역학조사를 통해 고찰해볼 만할 것이다.
이 시기 중 강우 기록이 가장 많은 해는 1879년(L3) 76일이고, 가장 적은 해는 1894년 20일이다. 문제는 1879년이 윤월년이고, 1894년엔 기록 누락이 심하여 통계에 신뢰문제가 발생한다. 『고종일기』를 검토할 때, 강우 기록이 없는 달이 주로 11, 12, 1월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겨울철 강우가 적은 한반도 기후특성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고, 또는 강우량의 수치가 너무 낮아 기록하지 않았던 상황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기록 누락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매달 기록된 해를 대상으로 다시 검토하면(단 겨울철 한두 달 누락된 해는 포함), 연간 강우 일수가 가장 적은 해는 1892년(L6) 32일, 1888년 36일, 1876년(L5) 39일, 1893년 40일, 1891년 47일간이 꼽힌다. 윤월년임에도 1892년의 강우 일수가 가장 적다는 것은 가뭄의 재해가 우려되는 해이며, 평년임에도 가장 적은 1893년과 1891년 역시 가뭄의 기상재해가 예상되는 해이다.
반대로 강우일수가 가장 많은 해는 윤월년과 상관없이 모두 60일을 상회하는데, 1871년 63일, 1872년 67일, 1873년(L6) 60일, 1874년 67일, 1875년 66일, 1877년 75일, 1879년(L3) 76일, 1896년 61일 등이다. 이들 해에는 가뭄과 반대의 수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고종 30년간 월별 강우일수의 분포는 어떤지 살펴본다. 통계의 편의상 평년과 윤월년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평년은 월평균 4.2일의 강우일수를 보이고(Table 17, Fig. 13), 윤월년은 오히려 더 적은 월평균 3.6일의 수치를 보인다(Table 18, Fig. 14). 월별 추이를 보면, 둘 다 여름철인 6월과 7월에 가장 높은 강우일수를 나타내며, 겨울철 11~2월 사이에는 매우 낮게 기록되고 있다.
이상은 연간 및 월별 강우일수의 다소와 추이를 통해 19세기 후반 고종시기의 기상변화 문제를 살펴본 것이다. 이 문제를 더 세밀히 살피기 위해서는 강우량의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에 강우량 통계를 아래에서 살펴본다.
3.6 『고종일기』의 측우량 기록
여덟째, 강우일수 통계에 이어 강우량 측면을 살펴본다.
『고종일기』는 비가 내리는 경우, 1일 12진시법에 따른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비가 내렸으며, 이 때 측우기(測雨器)의 수심이 몇 치 몇 푼이라는 측우일지 기록에 매우 충실하였다. 측우일지의 기록 방식을 예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1864년(고종 1 갑자) 1월 9일(신해): 미시(未時)부터 인정(人定)까지 비가 내렸는데, 측우기(測雨器)의 수심이 3푼(分)이었다. (또) 인정부터 5경까지 비가 내렸는데, 측우기의 수심이 2푼이었다.
- • 1864년(고종 1 갑자) 2월 25일(병신): 지난밤 인정(人定)부터 오늘 인정까지 비가 내렸는데, 측우기의 수심이 1치 4푼이었다.
- • 1864년(고종 1 갑자) 4월 17일(정해): 사시부터 신시까지 햇무리가 졌다. 지난밤 5경으로부터 18일 동틀 무렵까지 비가 내렸는데, 측우기의 수심이 1푼이었다.
『고종일기』에서 이 같은 측우기록을 뽑아 모으면 이 시기 강우량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한다. 이 중 1896년의 강우량 기록 상황을 예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년간 강우량 기록 상황을 정리한 뒤, 각 지표를 현대 단위로 환산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첫째, 음력월로 된 날짜를 양력으로 변환하였으며,14) 둘째, 1일 12진시법으로 표기된 강우 시각을 현대 1일 24시법으로 환산하였고, 셋째, 측우기의 주척단위로 치, 푼으로 기록된 측우량을 mm 단위로 변환하였다(1치 20mm, 1푼 2 mm).
1일 시각 표기의 변환은 다음 대비표에 의거하였다15) (Table 19). 강우 시각 기록이 각분 단위까지 표기한 것은 아니고, 자축인묘의 12진시 정도로만 표기하였는데, 이를 계산의 편의상 중간값으로 변환하였다.
이 시각 표기 중에서 동틀 무렵(開東)이란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의 월별 평균 일출시각을 참고하여 다음의 환산표를 마련하였고, 계산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근사시켰다(Table 20). 이상의 기준에 따른 1896년의 연간 측우량 기록은 (Table 21)과 같이 정리된다.
이상과 같이 1년간 1,060 mm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다. 참고로 현재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0 mm이다. 이를 월별 측우량 변동으로 알아보면 다음 그래프와 같다(Table 22, Fig. 15). 월평균 88.3 mm 강수량을 보였다. 5월에 연중 가장 많은 396 mm의 비가 내렸고, 6월이 290 mm이며, 3월 강우량이 142 mm로 높게 나온 점도 주목된다. 이 3개월을 제외한 나머지 9개월에는 모두 비가 적어, 한반도의 강우가 여름철에 집중되는 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연간 강우량의 변동을 살펴본다. 자료량이 많아 편의상 고종 1890년대 10년간(1891~1900)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아래와 같이 10년간 연평균 875.2mm의 강수량을 보였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통계를 내어도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해로 1897년은 평년임에도 불구하고 1208mm 강수량을 보였으며(양력으로는 1236 mm), 반대로 1894년과 1900년이 가장 적은 수량을 보였다(Table 23, Fig. 16). 각각 수해와 한재가 예상되는 해이다.
이것이 집중호우였는지 알아보기 위해 1897년의 월별 강수량 분포를 살펴보았다(Table 24, Fig. 17). 아래와 같이, 음력월 6월에 682 mm가 내려 연간 총량 1208 mm의 56%가 집중하여 내렸고, 7월의 244 mm까지 합하면, 1897년은 여름철 6월과 7월의 두 달에 걸쳐 1년 총강수량의 77%가 쏟아져 내렸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이 두 달을 제외한 나머지 달에는 강수량이 매우 적어 계절 가뭄이 들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통계값을 현대 기상과 직접 대조하기 위해 양력 연월로 환산하여 재계산하면, 아래와 같다. 양력월 7월에 682 mm, 8월에 286 mm가 내려, 연간 1232 mm의 79%가 집중하여 강우되었음을 보여준다(Table 25, Fig. 18).
이 때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1897년 양력 7월과 8월(음력 6, 7월)의 강우 상황을 기록일자별로 살펴보았고(Table 26), 이를 다시 양력일자 기준으로 재구성하여 강수량의 추이를 좀 더 면밀히 제시하였다(Table 27).
이를 보면, 7월에는 15일간 20차례 강우가 전개되었고, 특히 7월 6일~16일까지 11일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강우가 이루어졌으며, 그 우량도 490mm나 달한다. 다시 6일 뒤인 7월 22일엔 하루 동안 120 mm의 폭우가 쏟아졌고, 사흘 뒤인 25일부터 27일까지는 3일간 연속하여 72 mm의 강우가 지속되었다(Table 27, Fig. 19).
8월은 12일간 16차례 강우가 있었으며, 8월 19일엔 90 mm의 폭우가 내렸고, 한 달 내내 이틀 내지 4~5일에 한차례씩은 비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다(Table27, Fig. 20).
이상의 장기 호우 기상과 반대 현상을 보이는 1900년의 강우 상황을 살펴본다. 연평균 강수량이 37.0 mm로, 1897년의 100.7 mm에 비한다면 37%에 불과하며, 6월이 146 mm로 가장 많고, 다음이 8월 104 mm, 4월 86 mm가 내렸다(Table 28, Fig. 21). 이를 양력월일로 전환하면, 5월에 86 mm로 다소 많았고, 7월이 146 mm로 가장 많으며, 가을로 접어든 9월에 상당한 량의 88 mm가 내린 것으로 기록되었다(Table 29, Fig. 22).
이를 일자별로 다시 살펴보면, 양력 6~10월의 월평균 강수량이 17.9 mm에 불과하고, 6월 22일에 10 mm가 내려 장마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며, 이후 7월 5~6일에 62 mm의 비가 내렸고, 다시 휴게기를 가지다가 7월 14~19일까지 6~34 mm 사이로 내렸다(Table 30, Fig. 23). 8월에는 5일에 34 mm 내렸다가, 11일과 13일은 4 mm씩 조금 내렸으며, 한참 뒤인 25일에 16mm 내렸다. 9월 초에도 그러하다가 9월 18일에 62mm로 다소 많이 내린 뒤로는 10월에 20일의 2 mm를 제외하고는 계속 내리지 않은 것으로 기록하였다(Table 30, Fig. 24).
3.7 선행연구의 통계치 대조와 자료 재구성의 필요성
끝으로, 『고종일기』의 기존 연구 통계치와 대조를 해본다. 조선 후기 측우량 통계에 최초이자 지금까지 100년간 가장 권위를 지니는 와다 유지(和田雄治, 1859~1918)의 『朝鮮古代觀測調査報告』(조선총독부관측소, 1917)에 실린 <우량표> 일부를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필자가 앞서 제시한 고종 1890년대 10년간(1891~1900)의 측우량 데이터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Table 32). 와다는 지금은 일실된 『풍운기』, 『천변초출등록』 등과 『승정원일기』, 『일성록』의 기록을 갖고 1차 통계를 내었다고 하였으며, 다시 이 값을 당시 경성측후소 등 근대 계측법 기록에 연속시키기 위해 조선시대 기록값을 보정한 경정(更正) 작업을 거쳤는데, 이것이 경정후의 2차 데이터가 된다. 와다의 『朝鮮古代觀測調査報告』(1917)에는 전자가 <Table1 雨量表>(p.65-67)로 실렸고, 후자는 <Table 2 更正雨量表>(p.68-71)로 실렸다.
이 데이터를 필자의 것과 대조하면, 와다의 수치는 1892년의 경우만 제외하고 모두가 다른 수치로 기록되어 있다(Table 31). 곧 『고종일기』의 측우량 데이터가 아닌 것이다. 이 사정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매년의 월별 데이터를 다시 대조하였다. 1897년의 경우, 6개월이 서로 다르며(Table 32), 1900년의 경우 7개월의 값이 서로 다르다(Table 33). 그 오차의 범위도 월 100 mm까지 나는 경우가 있어 와다 유지의 우량표를 그대로 다 신뢰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물론 와다가 사용한 원자료 중에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어 완전한 복원과 대조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기에 그 자체로 자료의 가치는 높다 하겠다.
그럼에도 와다의 통계값이 『고종일기』와 오차가 적지 않다는 것은 『고종일기』에 기록된 측우량 데이터를 향후 전면 재검토하여 기준이 되는 기상일지 기록으로 새로이 재확정할 필요가 있다.16) 『일성록』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하여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도록 원전의 1차 사료를 명확히 제시하고서 분석하는 일은 근대 역사학과 자연과학이 공히 중시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고종일기』의 측우량 기록은 당시의 강우 상황과 강우량의 변동 흐름을 면밀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기상기록물이다. 분량이 많아 본고에서는 다 분석하지는 못하였지만, 승정원 등의 『고종일기』는 1864년부터 1907년까지 44년간의 장기간 기상기록물로 충분히 주목할 만하며, 이를 통해 19세기 후반의 한반도 서울의 기상상황을 재구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를 100년 뒤인 20세기 후반의 서울 기상상황과 대조하여 분석한다면, 더욱 긴 장기 기상변동 추이와 기상지표를 다양하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앞서 분석의 근간이 되는 원전의 1차 데이터가 확정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문제가 있다고 보이므로 이 지점부터 새롭게 구축하여야할 것이다.
4. 결 론
본고에서 다룬 역사적 기상일지 구축과 분석 작업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방대하고 역사기상학적 연구에 의의가 높은 과업이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국내학계에서 처음으로 조선시대 일기류 기록물을 전면 검토한 끝에, 문집류의 일기류에서는 47종을 개발하였고, 승정원일기 중에서는 고종일기 1종을 분석하여, 총 48종에 달하는 기상일지 일기물을 구축하였다. 이들 일기류의 기상일지 기간을 모두 합하면 124.5년 분량에 달하고, 여기에 고종일기의 44년간을 더하여 총합하면 무려 168.5년에 이른다.
비록 이들 기상일지 일기류에 기상학적으로 가용한 자료와 그렇지 못한 자료가 섞여 있는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하기에 따라 한반도의 역사기상학 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특히 본고의 후반부에서 일부 분석해본 고종승정원 일기의 기상기록물은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이 기상학적 측면의 자료 가치 제고를 위해 필자는 고종일기의 44년간, 때로는 30년간 기간에 집중하여 맑음의 기록과 흐림, 눈, 서리, 비의 기상기록 분포를 연도별과 월별로 나누어 분석하였고, 마지막에는 구체적인 수치를 기록한 측우량의 기록 상황을 연도별과 월별 및 음력과 양력별로 재구성하고 분석함으로써 고종대 19세기 후반의 기상 특성과 변동의 추이를 드러내고자 고심하였다. 또한 선행연구에서 제시한 고종일기의 데이터 부분이 1차 사료에 충실하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문제제기하였고, 이에 따라 향후 새로운 재구축 작업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분량과 시간의 여건상 본고에 수록하지 못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발발 직전인 1592년 1월 1일부터 명량해전에서 전사하는 1598년 11월 17일까지 무려 6년 11월간 매일 기록한 일기물이며, 여기에 거의 매일의 기상상태를 자세히 수록하고 있어 임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무대였던 남해안의 기상상황을 잘 들여다볼 수가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으로 『난중일기』는 바람의 관찰과 묘사가 다양한 특성을 내보이는데, 강풍, 동풍, 무풍, 역풍, 바람불순, 난풍, 센 남풍 등 여러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날씨에 대해서도 따뜻함, 찜통더위, 삼복더위, 봄날처럼 온화함, 맑고 온화함, 가을같은 날씨 등 흥미롭고 다채로운 묘사가 동반되어 있다. 후일 기회를 보아 이를 역사기상학적 데이터로 재구성하고 분석해내는 일도 한반도의 기상역사를 복원하는 일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 기대된다.
필자가 현대기상학 분야에 어두워서 더 이상 분석하기 힘든 지점을 현대 기상학계는 더욱 자세한 논점으로 제기해낼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향후 기상학자들과 협업을 통한 기상학-인문학의 융합연구를 기대해 본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4년도 기상청 (재)기상기술개발관리단의 “기상기후 역사자료의 수집과 활용방안 연구”(CATER2012-6130)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Note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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