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전 한국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
Abstract
This study collected and analyzed records related to the Asian dust phenomenon in Korean history books. I collected a wide range of records from diverse sources and identified data for analysis. 290 records were selected through this process. These records provide a variety of information including the occurrence time and duration of the phenomenon, other natural phenomenon occurring at the same date, descriptions of the phenomenon, and so on. Reports on, Asian dust in the historical records was not continuous or uniform. However, their appearance in certain months of the year is similar to that observed in modern times. In addition, I collected 90 records showing it that can be largely divided into two viewpoints which they were a natural calamity or an unusual phenomenon. Generally, natural phenomenons in historical books are mostly recorded in viewpoint of unusual phenomenon. Nevertheless, research result verified the record as actual observational data. Consequentially, it also indicates that this data is important for research from a meteorological point of view. I think that the data collected through this study can be helpful to modern meteorological studies related to the Asian dust phenomenon.
Keywords:
History, Asian dust, natural calamity, unusual phenomenon1. 서 론
한국에 영향을 주는 황사의 발원지는 중국 북부 내륙 또는 몽골의 일부 지역과 고비 사막 그리고 만주 등으로 알려져 있다(Chun et al., 2003; Lee and Kim, 2008; Kim et al., 2010). 이 발원지에서 다량의 모래입자가 한랭 전선을 동반한 저기압으로 인해 상층으로 상승하게 되는데, 이때 상승된 모래 먼지는 강한 편서풍에 편승되어 장거리 수송을 하게 된다(Merrill et al., 1989; Chung and Park, 1995). 이 과정에서 입자가 큰 것들은 대부분 발원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작은 입자들이 주로 장거리 이동을 한다(Chung and Park, 1998). 이처럼 황사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모래 입자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황사는 봄에 주로 발생하는 기상 현상으로, 최근에는 미세 먼지와 함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이에 환경 정책의 측면에서 국내외적으로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 및 사안으로 대두되었다(Kim, 2003; Park et al., 2013; Kim and Kim, 2018). 황사는 산업계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주목한다(Chu et al., 2003). 정밀함을 요구하는 제품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거나 항공기의 운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거리 이동을 하는 만큼 황사의 입자들이 작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가진 사람들 또는 농작물의 성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Chu et al., 2003; Hashizume et al., 2010; Middleton and Sternberg, 2013; Esmaeil et al., 2014; Lee et al., 2014). 전반적으로 황사는 인간의 건강과 사회 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Goudie and Middleton, 1992; He et al., 2015).
이처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 현상은 과거에도 발생하였다. 동아시아의 역사 기록에서는 그 흔적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중 한국의 역사서에서 확인되는 기록들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Chun, 2000). 한국의 역사 서적에서 황사로 추정되는 현상들을 선별하여 목록화한 연구는 Wada(和田雄治, Wada Yuji, 1859~1918)에 의해 처음으로 수행되었다(Wada, 1917). 이후 Kim (1985)은 역사서에 기록된 비(雨)를 설명하면서 우토(雨土)를 황사가 비에 섞여 내리는 현상으로 해석하였다. 사료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에 관한 분석은 Chun(2000)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과거의 황사 현상을 현대 관측에서 보여주는 황사와 비교하면서 역사 기록 속의 황사를 보다 명확하게 정리하였다(Chun et al., 2008). 이처럼 역사 기록에서의 황사 현상에 관한 Chun (2000)의 연구는 한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기상 현상들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데 기여했다.
이 연구에서는 역사 기록에 남겨진 황사 현상에 관하여 다시 새롭게 논의하려고 한다. 이전의 분석 자료보다 더 많은 기록들을 수집하였다. 또한 국문으로 번역된 자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원문 자료를 그대로 활용하였다. 국문으로 번역되면서 원문의 의도가 변질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수집된 기록들은 분석을 위해 자료화 하는 과정을 거쳤다. 기록의 선별 기준을 설정하고 적용함으로써 분석을 위한 최선의 자료를 선별하였다. 이어서 황사현상과 관련한 중요한 용어들을 선별하여 현대 기상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황사와 얼마만큼의 관련성이 있는지 검토하였다. 그리고 선별된 자료들의 분포로부터, 황사 기록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의 전반적인 결론과 그에 따른 향후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2. 연구의 방법 및 자료의 수집
2.1 기록의 수집
이 연구에서 활용한 역사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등이다. 이외 황사의 관찰 체계와 관찰 기록에서 확인되는 시각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운관지(書雲觀志)』와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활용하였다.
성주덕(成周悳, 1759-?)에 의해 편찬된 『서운관지』에는 관상감(조선에서 천문 등을 담당하던 기관)의 관원들이 관찰해야 할 자연 현상들과 기록 방법이 명시되어 있다. 이 현상들 중에는 토우(土雨)가 있다. 토우 현상이 목격되면 ‘몇 시 또는 몇 경에 사방이 어둡고 흐렸는데, 먼지가 내리는 것과 같았다’로 기록할 것을 설명하였다(Seong, 1818). 기록에 명시된 토우 현상의 특징들은 현대 기상학에서 정의하는 황사의 특징들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선행 연구에서는 황사의 옛 용어는 토우라고 주장하였다(Chun, 2000).
이외에 황사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용어들을 역사 서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Table 1은 황사 현상으로 추정되는 용어들을 정리한 것이다.
우토(雨土)의 기록은 고구려를 제외한 모든 왕조의 기록에서 확인되는 용어이다. 우토는 한국의 역사 서적에서 확인되는 황사의 첫 기록으로 의미가 있다. Kim (1985)은 비에 황사가 섞여 내리는 것으로 이해했고, Chun (2000)은 흙이 비처럼 내리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현재 황사의 순 우리말은 흙비로 알려져 있으며, 바람에 높이 날려 비처럼 떨어지는 모래 흙으로 정의하고 있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우토는 황사를 지칭하는 흙비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토는 비의 개념이 아닌 황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황무(黃霧)의 기록은 백제를 제외한 모든 왕조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황무는 누런(황색의) 안개라는 의미를 갖는다. 역사서에는 안개 현상을 구별하여 설명했기 때문에 안개의 일종으로 기록된 것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의 문종 즉위년(1450) 10월 28일에 황무란 누런 먼지가 공중에 가득 찬 것 같으나 실제로 먼지는 아닌 것이라고 기록되었다. 이 기록은 당시의 관측 수준이 황사와 안개를 구분할 만큼 정확하고 엄격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Chun, 2000). 하지만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무 현상은 황사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고려에서는 황사와 황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Chun et al., 2000). 『고려사』의 「오행지」에는 토행(土行)의 범주에 황생황상(黃眚黃祥)이라는 항목이 구분되어 있다. 황생황상은 누런 색의 기운이 있는 현상들을 일컫는 것으로 고대 중국의 『수서(隋書)』와 『송사(宋史)』, 『명사(明史)』에서는 주로 황사를 지칭하는 우토 현상을 이 항목에 기록하였다. 반면에 고려에서는 우토와 황생황상을 별도의 현상으로 구분하였다. 이와 같은 구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은 알 수 없다. 다만, 황생황상에 포함된 기록들이 황무와 황기(黃氣, 누런 색의 기운)로 설명된 것으로 보건대 분류하는 과정에서 시각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추가적으로 분류된 것이라 추정한다. 또한 황무와 관련한 기록들 중에는 농작물의 피해가 언급된 것들이 다수 발견되는데(4.3절 참고), 만약에 단순한 안개였다면 농작물에 손해를 입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고려하면 황무는 모래 입자가 가득한 형태의 모습이 마치 안개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 현상을 묘사하여 표현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혼몽(昏蒙, 昏濛)은 흐릿하고 어두움을 의미한다. 이 혼몽의 기록은 고려와 조선의 기록에서 확인되며, 혼몽(昏蒙)보다는 혼몽(昏濛)의 기록이 주로 활용되었으나 뜻하는 바가 동일하므로 큰 의미는 없다. 혼몽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현상의 모습을 묘사한 용어이다. 『서운관지』에는 황사 현상이 발생할 때, 혼몽이란 용어를 활용하여 표기하였다.
황적무(黃赤霧), 우황토(雨黃土), 황진(黃塵) 등은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만 확인된다. 황적무는 누런 빛을 가진 붉은 색 안개를 의미한다. 황무처럼 황사 현상을 묘사한 표현으로 추정한다. 우황토는 황토(누런 흙)가 섞여 내린 비 또는 황토가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표현이다. 우토와 유사한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황진은 누런(황색의) 먼지를 의미한다. 이 용어는 황사 현상의 특징을 잘 반영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토우, 매(霾), 황애(黃埃, 黃靄), 하진(下塵) 등은 조선의 역사 기록에서만 확인된다. 특히 황사의 옛 용어로 잘 알려진 토우라는 용어가 조선의 역사기록에서 처음 언급된 점은 흥미롭다. 용어 가운데 매는 흙비를 의미하는 한자 용어이다. 따라서 황사를 잘 반영한 단어라 할 수 있다(Lhim, 2007). 이미 중국에서는 기원전 78년에 기록된 만큼 활용된 역사가 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의 역사 서적에서도 1596년의 기록에서 확인된다(Zhang, 1983; Chun et al., 2001). 『진서(晉書)』에 수록된 「천문지(天文志)」에는 천지 사방이 어둡고 먼지가 떨어지는데, 옷이 젖지 않고 흙이 남아 있는 것을 매라고 하였다. 즉 매는 현대 관측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과 유사하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 서적에서는 매라는 단일적 단어보다 매우(霾雨)라는 융합적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매우는 기록의 특징과 시기를 살펴보면 여름에 발생하는 장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Chun, 2000). 다만 매라는 단일적 단어로 사용된 일부 기록에서는 황사로 추정되는 것이 5건이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이 5건의 기록을 황사 현상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여기서 황애의 기록은 각각 누런(황색의) 먼지를 의미하는 황애(黃埃)와 누런(황색의) 아지랑이를 의미하는 황애(黃靄)로 구분할 수 있다. 현상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황사 현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외에도 하진이란 용어를 황사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별하였다. 하진은 먼지가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서운관지』에는 혼몽과 함께 하진이 활용되어 황사 현상을 기록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황사 현상으로 추정되는 용어들은 총 12개이다. 이 용어들을 중심으로 기록을 수집하고 선별하여 분석을 위한 자료를 구축하였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하진(下塵)과 혼몽(昏濛)으로 언급된 기록들을 다수 발견하였다. 이 용어들은 『승정원일기』에 다수 기록되어 있는데, 『서운관지』에서 설명한 기록 방법을 잘 준수하면서 작성되었다. 선행 연구에서는 황사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옛 용어인 토우나 우토 등을 중심으로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수행되었다. 그러나 『서운관지』에서 제시한 기록 방법만을 준수한다면, 토우나 우토라는 용어를 반드시 사용하지 않아도 기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2 기록의 선별
수집된 기록 중에는 일부 선별이 필요한 기록들이 있다. 따라서 세 가지의 기준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설정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분석을 위한 기록에서 제외하였다.
첫 번째, 현상의 발생 시기가 불분명한 기록은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현상의 발생이 며칠인지 또는 몇 월인지 제시되지 않은 기록들이 일부 발견된다. 또한 과거의 현상만을 언급할 뿐 관찰 시기를 알 수 없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현상의 관찰 시기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석을 위한 자료로 적합하지 않다. 두 번째, 인용을 위한 용어로서 활용된 기록은 분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황사와 관련한 용어들 중에는 과거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또는 인용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관찰된 기록이라기 보다는 활용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세 번째, 문맥상 황사 현상을 지칭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기록들은 수집된 기록에서 삭제하였다. 수집을 위해 설정한 용어가 문장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한문은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해석상 관련성이 의심된다면 수집된 기록에서 재 선별하여 삭제하였다. 이상 세 조건들을 잘 유의하면서 수집된 기록들로부터 분석을 위한 자료들을 선별하였다. 기록들 중에는 동일한 시기에 다양한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한 기록들이 있다. 현상의 기록은 각각 구분하겠지만 분석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때는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하여 정리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선별된 기록들은 총 290건이다. 이 기록들 중에서 81건(27.9%)의 기록들은 용어만 짧게 명시되었다. 예를 들어, ‘토우’ 또는 ‘우토’ 등으로 짧게 언급된 기록들이다. 기록들 중에서 143건(49.3%)의 기록들은 현상의 발생 시각 또는 지속 시간을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종일’ 또는 ‘10여 일’ 등의 넓은 의미의 시각부터, ‘자묘시지유시(自卯時至酉時, 묘시에서 유시까지)’처럼 세부적인 시간의 의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Table 5, Table 6 참고). 111건(38.3%)의 기록들은 황사 현상과 동일한 날에 발생한 다른 자연 현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훈’ 등의 기상현상, ‘월범’ 등의 천문현상이 기록되었다. 마지막으로 25건(8.6%)의 기록들은 황사 현상을 묘사하여 서술하였다. 예를 들어, ‘약연비연(若煙非煙, 연기 같은데 연기는 아니다)’ 등으로 황사 현상이 어떠하였는지를 표현하였다.
최종적으로 수집된 기록들은 모두 동아시아 전통시각 체계에 따라 음력의 날짜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양력의 날짜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추가적으로 한국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황사 자료를 수집하였다. 자료는 서울 지점에서의 관측 결과를 활용하였다. 수집된 자료의 관측 기간은 1988년부터 2017년까지의 자료로 총 30년에 해당한다.
2.3 연구의 방법
이 연구에서 활용하는 역사 기록들은 역사 서적에 남겨진 기록이라는 점에서 정보의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황사 현상과 관련된 기록은 기기의 도움 없이 맨눈으로 관찰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황사의 농도와 입자 크기, 가시거리 등을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 명확한 것은 발생 유무와 명확한 시기뿐이다. 이외 간접적으로 드러난 지속 시간과 현상에 관한 묘사 그리고 같은 시기에 관찰된 다른 자연현상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제한된 기록만으로는 많은 정보를 산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장기간의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연구를 위한 중요한 근거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기록의 분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부 통계 처리가 필요하다. 역사 서적에 기록된 자료들은 현대 관측에 의한 자료와 성격이 다르다. 현대 관측은 물리적 양에 기초하여 정량적 기준에 따라 측정되는 반면에 조선의 관측은 맨눈에 의해 관찰된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누적된 자료는 흥미로운 분포 경향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확인과 검증을 위해서는 통계적 방법에 기초한 기초 분석이 필요하다(Bevington and Robinson, 2003).
기초 분석을 통한 분포의 경향은 선행 연구의 결과들과 비교하여 현상의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 과거 기록을 활용한 연구는 크게 자료로써의 관점과 역사로서의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관점을 모두 적용하여 황사 현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역사 기록의 자료로써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Figure 1은 현대 관측에 의해 확인된 황사의 발생일 수를 월별로 구분하여 살펴본 것이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1988년부터 2017년까지의 관측 기록을 활용하였다. 30년의 기간 동안 265일의 황사가 발생하였다. 그 중에서 3월(67), 4월(102), 5월(43)에 발생한 일 수는 총 212일이다. 황사 관측 일 수에 80%가 봄철 시기인 3월, 4월, 5월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Fig. 1을 기준으로 하여 역사기록에서 확인되는 월별 분포들과 비교할 것이다.
3. 왕조별 황사의 기록
3.1 삼국시대(신라, 고구려, 백제)
아달라 21년(174) 1월(음력)에 ‘우토’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신라(B.C. 57~935년)의 첫 역사 기록이면서, 한국의 역사서에서 확인되는 한반도 내 황사의 첫 기록이기도 하다(Chun, 2000). 신라의 역사 기록에서 발견된 황사 기록들은 Table 2에 요약 정리하였다. 우토 기록은 6건, 황무 기록은 2건이다. 전체 8건의 기록을 발견하였다. 다만 역사 기록으로부터 발견한 이 기록들은 달(月)은 알 수 있으나 날(日)은 알 수 없다. 따라서 음양력의 변환은 수행할 수 없었다(이하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 기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음력의 달만을 고려하여 살펴보면 1월은 3건, 2월은 2건, 3월은 2건, 4월은 1건이다. 양력을 고려한다 해도 전반적으로 늦겨울과 봄에 기록들이 분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분포는 Fig. 1의 현대 관측에서 확인되는 황사의 집중적인 분포 계절과 유사하다.
8건의 기록들 중에는 황사와 함께 다른 자연 현상이 언급된 일부 기록들이 있다. 아마도 황사가 발생하던 날에 다른 자연 현상도 발생하여 기록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지 22년(500) 4월(음력)에 폭풍과용이 나타났다는 설명으로 황사와 함께 기록되었다. 여기서 폭풍은 강한 바람을 의미하며, 용이 나타났다는 것은 강한 회오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진평왕 49년(627) 3월(음력)과 문성왕 12년(850) 1월(음력)에는 큰 바람을 의미하는 대풍이 기록되었다. 기록에서 확인되는 동반된 자연 현상들은 모두 바람과 관련한다. 중국 북부 내륙에서 상승된 모래 입자가 편서풍에 편승되어 수송되려면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북서풍이 주로 발생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강한 바람이 형성되고 황사 발생에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Yamamoto et al., 2007; Kim, 2008; Kim and Lee, 2013).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황사가 발생하는 시기에 강한 바람이 언급되는 것은 두 현상 사이에 개연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기록들에는 현상의 지속 시간 또는 기타 내용들이 확인된다. 진평왕 49년(627) 3월(음력)에 발생한 황사는 5일간 지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에도 심한 황사일 경우 며칠간 지속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당시에도 심한 황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혜공왕 16년(780) 2월(음력)에는 황사 현상에 관한 원인이 기록되었다. 당시 왕의 부도덕한 행실을 황사의 원인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때 그 원인에 따른 결과를 재이(災異)로 기록하였다.
고구려(B.C. 37~668년)에서는 미천왕 1년(300) 10월(음력)에 황무가 기록되었다(Table 3). 흥미로운 점은 기록된 시기가 음력 10월이라는 것이다. 황사는 주로 봄에 집중되어 분포하고 있으나 고구려의 기록은 가을에 나타난 것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현대의 관측으로부터 확인되는 황사의 분포를 살펴보면 가을에도 황사는 발생할 수 있다(Fig. 1). 그러나 기록된 시기로부터 특별한 사항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고구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현상의 관찰이 수행된 지리적인 위치가 북쪽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고구려의 역사 기록에서 황사로 추정되는 기록은 전체 1건만 확인된다. 동반 현상은 없으며, 기타 특이 사항도 없다.
백제(B.C. 18~660년)에서는 근구수왕 5년(379) 4월(음력)과 무왕 7년(606) 3월(음력)에 우토 기록이 있다(Table 4). 백제의 기록도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음력의 달만 확인할 수 있다. 기록된 음력 3월과 4월은 봄에 발생된 현상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기록은 2건에 불과하지만 황사가 주로 집중되어 분포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근구수왕 5년(379) 4월(음력)에 현상의 지속 시간이 기록되었다. 하루 종일 또는 온종일이라는 의미의 경일로 간단하게 명시되었다. 당시 발생된 황사는 하루 동안 지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2 고려(918~1392년)
현종 4년(1013) 1월 28일(양력: 3월 12일)의 황무기록이 황사와 관련한 고려의 첫 기록이다.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 수집된 황사 자료는 전체 69건이다. 이 중에서 54건(80.6%)은 우토로 기록되었고, 12건(17.9%)은 황무로 기록되었다. 황진과 황적무, 우황토는 각각 1건씩 기록되었다.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 수집한 자료들은 모두 음력 날짜로 명시되어 있다. 69건 중에서 4건은 일자가 불분명하고 음력의 달만 확인된다. 우선적으로 4건의 기록을 살펴보면, 각각 음력 1월(2건)과 2월(2건)에 기록되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어서 음력 날짜가 명시된 65건을 양력 날짜로 변환하여 월별 분포를 살펴보았다(Fig. 2). 전반적으로 봄에 해당하는 3월(17), 4월(18), 5월(4)에 약 60.0%가 집중되어 나타난다. 이와 같은 분포는 현대의 관측으로부터 확인되는 황사의 월별 분포와 유사하다. 그리고 11월에 11건(16.9%)의 기록이 확인되는데, 3월과 4월에 이어서 많은 개수 분포를 보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분포이다. 현재 주어진 자료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명백한 원인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추후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다른 자연 현상들을 추가적으로 수집하여 분석한다면 가을에 발생한 황사 현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Figure 3은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의 연도별 분포이다. 고려 초기인 10세기에는 기록이 없으며, 11세기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12세기 중반에 주로 기록이 집중되었다. 이후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에는 기록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고려(약 474년)의 기록들은 평균 약 6.9년에 1건으로 확인되나, 분포적 특징은 연속적이거나 균일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려 건국 이후 약 100년간 황사 기록이 없는 점과 1260년부터 1365년까지 약 105년 동안에 황사 현상은 3건만 확인되는 점은 흥미롭다. 이와 관련한 원인은 명백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수집된 전체 자료들 중에서 7건(10.1%)은 현상의 발생 시각과 지속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 현종 9년(1081) 4월 7일(양력: 4월 25일)에는 4일 동안 현상이 지속되었고, 선종 8년(1091) 4월 12일(양력: 5월 3일)에는 3일 동안 현상이 지속되었으며, 신종 3년(1200) 윤2월 22일(양력: 4월 7일)에는 2일 동안 현상이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신종 3년(1200) 3월 15일(양력: 4월 29일)과 공민왕 16년(1367) 3월 15일(양력: 4월 14일)에는 온종일 현상이 지속되었다고 기록되었다. 특히 인종 15년(1137) 2월 3일(양력: 2월 24일)에는 수일(數日)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수일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4~5일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민왕 15년(1366) 10월 16일(양력: 11월 18일)에는 야(夜)로 기록되었다. 이 기록은 밤 동안에 현상이 발생했었음을 의미한다. 밤에도 황사 현상의 관찰이 수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선별된 기록들 중에는 황사 현상과 함께 기록된 다른 자연 현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69건 가운데 11건(15.9%)에서 다른 자연 현상들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함께 기록된 자연 현상들 가운데 가장 많은 현상은 바람(대풍 4건, 폭풍 1건)으로 총 5건이다. 이어서 눈(설 1건, 대설 1건)의 기록으로 총 2건이다. 이외에 우박, 안개, 천둥 등이 황사와 함께 기록되었다. 흥미로운 현상들 중에는 원종 1년(1260) 1월 26일(양력: 3월 9일)에 기록된 일혼무광(日昏無光)과 공양왕 2년(1390) 4월 1일(양력: 4월 16일)에 기록된 일광불현(日光不見)이 있다. 일혼무광은 해가 어두워져 빛을 잃었음을 의미하고, 일광불현은 해의 빛을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현상들은 대기 광학 현상이다. 아마도 황사 현상에 의해 발생된 간접적인 현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당시에 발생된 현상들을 묘사한 기록을 통해서 황사에 의한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공민왕 16년(1367) 3월 15일(양력: 4월 14일)에 발생한 황사현상에 관하여 인불능개목(人不能開目)으로 기록하였다. 즉 사람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 발생된 황사 현상은 심한 농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3.3 조선(1392~1910년)
조선에서의 첫 기록은 태조 7년(1398) 11월 19일(양력: 12월 17일)에 황무의 기록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기록들은 이전 시기의 기록들보다 자료가 더 많고 구체적이다. 우선 황사 현상과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토는 46건, 황무는 18건, 토우는 16건, 황애는 6건, 매는 5건 발견하였다. 이외에 혼몽(昏蒙), 황애(黃靄)의 기록은 각각 1건씩 확인하였다. 또한 하진(下塵)은 100건, 혼몽(昏濛)은 93건 발견하였다. 황사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들 중에서 하진의 기록이 가장 많은 개수 분포를 보여준다. 종합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중복으로 기록된 용어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리하면 전체 210건의 기록이 확인된다.
Figure 4는 조선의 역사 기록에서 선별한 황사 현상들의 월별 분포이다. 3월(28), 4월(85), 5월(60)에 전체 173(82.4%)건이 집중되어 나타난다. 현대의 기상관측에서 확인되는 황사의 월별 분포(Fig. 1)와 매우 유사하다. 고려의 월별 분포(Fig. 2)와 비교하면, 고려의 기록은 3월과 4월에 집중된 반면에 조선의 기록은 4월과 5월에 집중된 경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차이는 기록된 개수 분포의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는 약 6.9년에 1건의 비율을 보이지만, 조선은 약 2.5년에 1건의 비율을 보인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모두 전반적인 분포는 봄에 집중된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세부적인 월별분포에서는 고려와 조선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의 월별 분포가 현대와 유사하다는 점은 선별된 용어들이 황사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Figure 5는 황사 현상의 연도별 분포이다. 17세기 중반을 전후로 기록이 집중되어 있고, 이어서 16세기 중반과 18세기 중반에 기록이 집중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기록이 전혀 없는데, 이는 황사 현상으로 추정할 만한 기록들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기록이 급감하는 경향은 황사 현상 이외에도 다른 자연 현상의 기록들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210건의 기록들 중에서 134건(63.8%)은 현상의 발생 시각과 지속 시간을 언급하였다. 이전 왕조에서 기록된 현상들 보다 더 구체적으로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였음을 의미한다. 태종 6년(1406) 2월 9일(양력: 2월 27일)에 14일간 황사 현상이 지속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선조 39년(1606) 9월 1일(양력: 10월 2일)에 10여 일 동안 현상이 지속되었음을 기록하였다. 이외에도 5일, 4일, 3일, 2일 그리고 온종일 발생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낮 또는 밤에 발생한 현상인 경우에는 당시의 시각 체계에 따라 시간을 명시하였다(Table 5와 Table 6 참고). 관찰 시각이 명시되었다는 점에서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체계가 비교적 잘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Table 5는 조선의 시각 구분인 12진과 현대의 시간을 비교한 것이다. 조선의 시각 체계는 서양의 역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헌력법의 유입 시기를 전후로 100각 법에서 96각 법으로 체계가 바뀌지만 12진의 구분은 그대로다. 시각이 명시된 기록들은 모두 12진의 시 단위에서만 언급되었고, 세부적인 각과 분의 단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12진에 따른 대략적인 현대의 시간을 Table 5에 정리한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Ahn and Park, 2004). 예를 들어, 인조 26년(1648) 2월 13일(양력: 3월 6일)에 발생한 황사 현상의 지속 시간은 자묘시지유시(自卯時至酉時)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자(自)는 ‘~에서’, 지(至)는 ‘~까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묘시(5~7시)에서 유시(17~19시)까지 현상이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12진의 한 시각이 차지하는 영역이 현대의 2시간에 해당하기 때문에, 최대 2시간 이내의 오차를 고려해야 한다. 오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전 왕조보다 더 구체적으로 현상의 발생 시간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Table 6은 기록에서 확인되는 다른 시간들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밤을 다섯 등분하여 구분하였다(Seo et al., 1796). 이때 밤 시간은 일몰 후부터 다음날 일출 전까지인데, 새벽(2.5각 =약 40분)과 초저녁(2.5각 =약 40분)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다. 이 나머지 시간을 1경부터 5경까지 다섯 등분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절기에 따라 하나의 경이 차지하는 시간의 길이는 달랐다. 여름엔 밤 시간이 짧은 만큼 하나의 경이 차지하는 시간은 짧았고, 반대로 겨울엔 밤 시간이 긴만큼 하나의 경이 차지하는 시간도 길었다. 따라서 밤 시각에 따른 12진의 시간은 절기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Table 6에 정리한 환산된 시각은 최대 범위를 고려하여 대략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외에도 기록에서는 다양하게 표현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새벽을 의미하는 매상과 초저녁을 의미하는 초혼이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아침을 의미하는 조와 저녁을 의미하는 석이 시간 표현으로 일부 사용된 기록이 발견되었다.
210건 가운데 97건(46.2%)의 기록에서 황사와 함께 언급된 143개의 자연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람, 눈, 비, 우박, 안개 등의 기본적인 기상 현상이 확인되며, 천둥과 번개, 지진, 무지개, 햇무리, 달무리, 노을 등의 기록도 다수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낮에 금성이 보이는 태백주현(太白晝見) 현상, 달에 의해 항성이나 행성이 가려지는 월범(月犯) 현상도 함께 확인된다. 일반적으로 황사는 천문 현상과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낮에 금성을 관찰한 역사 기록들의 월별 분포가 봄에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 원인으로 황사 현상에 주목한 바 있다(Jeon et al., 2018a). 맨눈으로 낮에 금성을 관찰하기란 쉽지가 않다. 천체 위치학적으로 금성과 태양 사이의 이각과 밝기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도 기상학적 변수가 무엇인가에 따라 관찰의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황사로 인한 대기 시상의 저하는 낮에 금성을 관찰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기상 현상 가운데 하나인 황사가 천문 관찰의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Jeon et al., 2018a).
태종 10년(1410) 12월 1일(양력: 12월 26일)에 몇 걸음 밖의 사람과 말을 분간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었다. 중종 15년(1520) 3월 16일(양력: 4월 3일)에 밤과 같이 어두워졌다고 기록되었다. 광해 1년(1609) 3월 27일(양력: 4월 30일)에 지척만큼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었다. 숙종 15년(1689) 윤3월 3일(양력: 4월 22일)에 연기 같은데 연기는 아니라고 기록되었다. 이상의 기록들은 조선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을 묘사한 내용들이다. 황사가 대기 시상과 지상에 미친 정도가 얼마만큼이었는지, 황사의 규모가 어떠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황사로 인한 대기 시상의 효과는 대기 밖에서 벌어지는 천문 현상의 관찰에도 방해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선별된 기록들 중에서 41건은 지방에서 보고된 기록들이다. 보고된 지역을 8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평안도 지역의 보고 기록이 13건으로 가장 많다. 이어서 전라도가 8건, 경상도와 충청도, 황해도와 함경도는 4건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경기도와 강원도는 3건의 기록에서 확인된다. 현대에도 지역별 황사 발생 비율을 살펴보면 서해안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이 관측되는데, 기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 대륙에서 태평양 방향으로 이동하는 기류의 효과가 황사를 증대시킨 요인이 되었다고 해석한다(Chun, 2000). 반면에 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당시 평안도와 전라도는 대표적인 쌀 생산지역이다. 조선시대는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쌀 생산량이 조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컸을 것이다. 따라서 평안도와 전라도는 대표적인 쌀 생산지로써 황사 현상이 발생하게 될 때면 주된 관심 지역이었을 것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황사 현상과 관련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기록되었을 것이다. 세종 14년(1432) 6월 3일(양력: 6월 30일)에 황무로 인해 보리가 손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었다. 황사 현상이 농작물에 피해를 입힌 직접적인 기록인 것이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황사는 인체의 호흡기 질환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농작물에도 영향을 미친다(Chu et al., 2003; Hashizume et al., 2010; Middleton and Sternberg, 2013; Esmaeil et al., 2014; Lee et al., 2014). 그러한 영향은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황사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가 기록된 만큼 농경 사회였던 조선에서는 황사란 관심을 갖고 살펴서 주의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관심을 고려하면 지방에서 보고된 황사 기록이 한반도 내 대표적인 쌀 생산지였던 평안도와 전라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황사 기록의 분석
4.1 하진과 혼몽
『서운관지』에는 다양한 자연 현상들을 관찰할 때 작성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이 기록들은 조선에서의 관상감이 어떤 체계를 가졌는지 유추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여기에는 황사를 의미하는 토우가 언급되어 있다. 토우가 발생하면 ‘몇 시 또는 몇 경에 사방이 어둡고 흐려졌는데, 먼지가 내리는 것 같다’고 기록할 것을 명시하였다. 여기서 몇 시와 몇 경은 낮 시간과 밤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Table 5와 Table 6 참고).
하진과 혼몽이 언급된 기록은 128건으로 2건은 고려의 기록, 126건은 조선의 기록이다. 여기서 고려의 기록인 2건은 혼몽으로 기록되었다. 128건의 기록들 중에 하진이 언급된 기록은 100건, 혼몽이 언급된 기록은 93건이다. 즉 128건의 기록 가운데 65건의 기록은 하진과 혼몽이 함께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함께 기록된 기록들은 서운관지에서 제시한 현상의 기록 방법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Figure 6은 하진과 혼몽으로 묘사된 기록들의 월별 분포이다. 3월(15), 4월(60), 5월(42)에 117건(92.8%)으로 봄에 집중되어 분포되었다. 전반적으로 분포되는 시기가 현대의 황사 관측에서 보여주는 월별 분포(Fig. 1)와 유사하다. 특히 고려의 월별 분포(Fig. 2)와 조선의 월별 분포(Fig. 4)로부터 Fig. 6을 비교하면 봄에 더 많은 비율로 집중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하진과 혼몽으로 묘사된 기록들은 황사 현상임을 보여주는 용어이면서 규정된 관찰 방법에 따라 작성된 기록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진과 혼몽으로 묘사된 128건의 기록들 중에서 124건(96.9%)은 현상의 발생 시각 또는 지속 시간이 언급되어 있다. Table 5와 Table 6에 제시한 낮 시간과 밤 시간 체계에 따라 기록되었다. 특히 낮 시간 이외에 새벽, 초저녁, 밤 시간의 기록들이 22건 발견되었다. 황사를 의미하는 용어들이 현상에 따른 효과를 바탕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밤에 황사를 식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사를 관찰한 점과 현상의 시간이 제시된 점은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이와 관련한 추가적인 자료 수집과 함께 현상들의 기록에 따른 특징들을 분류한다면 관찰을 위한 방법론에 관하여 폭넓은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역사 기록에서 자연 현상들의 자료를 활용하고 분석하는데 얼마만큼의 신뢰도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진과 혼몽의 기록들과 함께 언급된 자연 현상들을 113건 발견하였다. 113건의 기록들로부터 햇무리로 추정되는 현상들은 48건, 달무리로 추정되는 현상들은 19건 확인하였다. 그리고 대기 시상에 영향을 미쳐 평소보다 해가 붉게 나타난 기록들은 14건, 달이 붉게 나타난 기록들은 2건 발견하였다. 또한 해의 빛이 약해진 것처럼 느껴지거나, 어두워진 것처럼 느껴진 기록들은 6건 발견하였다. 전체 128건의 기록들 중에서 89건(69.5%)의 기록들이 대기 광학적 현상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햇무리와 달무리는 주로 상층에서 빙정에 의해 굴절되어 나타나는 광학 현상으로 기압골의 접근과 관련한다(Lynch, 1978). 따라서 햇무리와 달무리는 봄철의 저기압 발생이 황사 발생과 연관성이 있고, 황사의 장거리 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뒷받침 해주는 간접적인 근거라 할 수 있다(Qian et al., 2002; Yang et al., 2008). 이외 해와 달이 붉어지는 현상들은 대기 중 입자 성질과 농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산란에 의한 간접적인 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진과 혼몽으로 기록된 자료들로부터 이와 관련한 현상들이 높은 비율로 함께 언급된 점은 황사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4.2 연도별 분포와 월별 분포
한국의 역사 기록에는 황사 현상과 관련한 기록들이 있다. 황사를 지칭하는 용어부터 묘사하는 용어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현상을 기록하였다. 수집된 기록들은 전체 290건이며, 이 가운데 날짜가 명시된 기록들은 275건이다. 4.2절에서는 275건의 기록을 활용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Figure 7은 한국의 역사 서적에 기록된 황사 현상과 관련한 기록들의 연도별 분포이다. 11세기 이후 기록의 개수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14세기 무렵에 기록의 개수가 감소하였다가 다시 증가하면서 17세기에는 가장 많은 분포를 보여준다. 특히 고려의 역사 기록에서는 13세기 무렵, 약 1세기 동안 단 3건의 황사 현상만이 언급되었다. 전반적으로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의 기록 분포는 연속적이거나 균일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유사하게 근현대 이후 약 1세기 동안 한반도 내에서 발생한 황사 빈도 수를 살펴보면 연속적이거나 균일하지 않다(Chun, 2000). 이와 같은 결과는 과거의 역사 기록이 반드시 연속적이거나 균일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Figure 8은 한국의 역사서에 기록된 황사 현상의 월별 분포이다. 3월(45), 4월(103), 5월(64)에 212건(73.1%)이 집중되어 나타난다. 봄에 집중된 분포 형태는 현대의 황사 관측에서 확인되는 월별 분포(Fig. 1)와 유사하다. 또한 고려(Fig. 2)와 조선(Fig. 4), 그리고 하진과 혼몽(Fig. 6)의 분포에서 보여주는 형태와 유사하다.
봄에 집중되어 나타난 기록들의 분포 모습은 역사 서적으로부터 수집된 기록들이 황사임을 입증하는 좋은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분포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역사 기록에서의 자연 현상에 관한 기록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기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현상들을 기록하였다. 이와 관련한 예로 역사 기록에서의 번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현대 관측에 의한 번개의 월별 분포는 일반적으로 대기가 불안정한 6월, 7월, 8월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서는 9월, 10월, 11월에 번개가 집중되었고, 특히 11월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여준다(Jeon et al., 2018b). 대기가 불안정한 시기가 상대적으로 많은 여름철에 번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게 인식했고, 이 외 시기에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현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Jeon et al., 2018b).
그렇다면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황사 현상의 분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 현대 이전의 사람들은 황사 현상을 흔하지 않으면서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한 것 같다. 매년 봄철에 황사가 발생했더라면, 봄철에는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봄철을 제외한 다른 시기에 황사 현상에 관한 기록들이 집중되었으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서의 월별 분포는 현대의 월별 분포와 유사하다. 자연 현상들 가운데에서 황사 현상만을 특별하게 취급한 근거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황사가 일정한 오차 범위 이내에서 매년 꾸준하게 정량적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닐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 추정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한반도 내에서 관측된 황사의 연도별 분포가 매년 정량적이거나 연속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Chun, 2000; Cho and Chun, 2003; Kim, 2008). 물론 이 연구에서 활용한 기록이 역사서의 자료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4.3 재해와 재이
분석을 위한 자료로써의 기록 이외에 인용 또는 설명을 목적으로 황사 현상이 활용된 기록들을 별도로 90건 수집하였다. Figure 9는 90건의 기록들로부터 확인되는 월별 분포이다. 황사 현상에 관한 기록들의 월별 분포와 비교하면 집중되는 분포의 형태가 약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뒤로 치우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분포의 치우침은 왕과 신하들 사이의 논의가 현상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 진행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황사의 규모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길어지는 경향도 확인되는데, 그러한 경향으로 인하여 여름의 기록이 가을보다 더 많이 분포된 것으로 짐작된다. 기록들은 서술된 내용에 따라 구분하면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타난다. 황사 현상에 의한 사회 경제적 피해를 의미하는 재해의 관점과 재앙의 현상으로 인식하여 정치 사상적인 해석으로 변질해가는 재이의 관점이다. 여기서 재이의 관점과 관련하여 역사서의 자연 현상에 관한 기록들을 재이로 바라보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연 현상에 관한 기록이 정치 제도적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아 생산되었고, 취사선택의 과정이 인위적인 선별을 거쳤기 때문에 당시의 기후 상황을 반영한 자료라 할 수 없는 인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Park, 2010; Kyung, 2013). 역사서의 기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점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황사에 관한 재이의 관점을 논의하려면 기록이 작성된 시점의 정치적 배경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황사 기록으로부터의 구체적인 사상적 검토는 추후에 논의하고자 한다.
90건의 기록들 중에서 12건(13.3%)으로부터 재해의 관점을 확인하였다. 12개의 기록들 중에서 10건의 기록들은 농사와 관련된 피해를 확인할 수 있고, 2건의 기록들은 가뭄과 관련한 피해를 확인할 수 있다. 농사와 관련된 피해는 주로 밀과 보리의 손해를 설명하고 있으며, 벼의 손해에 관한 기록은 1건 확인된다. 황사가 농작물에 어떤 원리로 생육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오늘날에도 황사에 의해 농작물에 피해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사량의 감소를 유발한다거나 농작물의 숨구멍을 막으면서 생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Chu et al., 2003). 이와 관련한 추가적인 자료 수집이 이루어진다면 황사와 농작물의 영향을 연구하는데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명종 7년(1552) 6월 26일(양력: 7월 1일)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도 황사로 인해 보리가 손상을 입었다. 보리가 손상을 입었다는 기록뿐이어서 구체적인 피해 규모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반도 전 지역이 황사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광범위한 영역에서 황사가 발생한다면 단일 시간 동안에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황사 현상에 관한 기록들이 한반도 내 대표적인 쌀 생산지인 평안도와 전라도에 집중된 사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황사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리는 상황이 발생할 까봐 왕은 걱정하였다(명종 5년 5월 26일, 양력: 1550년 6월 10일). 또한 황사의 영향으로 곡물의 수량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에 금주를 시행하기도 하였다(연산 7년 4월 28일, 양력: 1501년 5월 14일). 이외에도 세종 24년(1442) 1월 5일(양력: 2월 15일)에는 황사에 강한 식물로 귀맥(귀리)이 언급되었다. 아마도 세종은 귀맥(귀리)을 황사로 인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식물로 활용하려 했던 것 같다.
나머지 78건(86.7%)의 기록들로부터 재이의 관점을 확인하였다. 재이의 관점에 관한 언급은 신라의 역사기록에서 처음 확인된다. 혜공왕 16년(780) 2월(음력)에 황사 현상의 발생 원인을 왕의 행실과 관련한 재이 현상으로 기록하였다. 전반적으로 황사 현상이 발생하면 신하들은 가장 먼저 왕이 공구수성 할 것을 요청하였다. 공구수성이라 함은 몹시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어서 왕은 신하들에게 상하를 막론하고 구언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신하들은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는데, 대부분이 당시의 정책 또는 정치 사안으로 구성된 건의들이었다. 기록으로부터 확인되는 재이 기록의 요지들은 이상과 같다. 하지만 재이 기록만을 가지고 황사 현상에 관한 사상적 논의를 검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추후에 관련 자료들의 수집과 면밀한 검토를 통해 재이에 관한 연구를 논의한다면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5. 결론 및 논의
한국의 역사 서적들로부터 황사로 추정되는 290건의 기록들을 선별하였다. 신라는 8건, 고구려는 1건, 백제는 2건, 고려는 69건, 조선은 210건이다. 수집된 기록들은 다양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 현상의 발생 시각과 지속 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현상과 함께 기록된 다른 자연 현상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현상을 묘사한 기록과 간접적으로 발생된 대기 광학 현상들도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서운관지』(Seong, 1818)에 명시된 토우(황사)의 관찰 기록 방법에 주목하였다. 기록 방법에 서술된 흥미로운 용어는 하진(먼지가 떨어진다)과 혼몽(어둡고 흐릿하다)이다. 이 두 용어들은 황사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현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수집된 기록들의 약 44.1%에 해당하는 128건의 기록들이 이 두 용어로 기록되었다. 이 두 용어들은 주로 봄에 집중되어 기록되었고, 약 95% 이상의 기록들이 현상의 발생 시각과 지속 시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황사 현상과 함께 기록된 다른 자연 현상들의 약 70% 이상이 대기 광학 현상임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결과들은 하진과 혼몽으로 기록된 용어들이 황사 현상의 특징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근 현대 이전의 사람들은 매년 특정 시기에 꾸준히 발생하는 현상들을 당연한 현상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시기의 현상은 기록에 남기지 않았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현상의 경우에는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기록에 남겼다. 만약에 황사 현상들이 매년 봄철에 발생했다면, 당연한 현상으로 인식하였을 것이고 특별한 이유 없이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특정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기록하였다. 특정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기록했다는 것은 황사 현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규정할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황사 현상은 일정한 오차 범위 이내에서 매년 꾸준하게 정량적으로 발생한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역사 기록에서 보여주는 황사 현상의 월별 분포는 현대 관측에서 확인되는 황사의 월별 분포와 거의 유사하다. 특정 시기의 구분 없이 현상의 발생을 그대로 기록한 결과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사 기록에서 보여주는 연도별 분포는 연속적이거나 균일하지 않다. 이 분포는 현대 관측에 따른 지난 1세기 동안, 황사 발생 일수의 분포 변화율과 유사하다. 이 결과는 황사 현상이 꾸준히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다른 자연 현상들의 분포들도 연속적이거나 균일하지 않다. 그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황사 현상의 연도별 분포에 대한 해석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 기록의 황사는 현상 자체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동반되는 다른 자연 현상들의 특징들도 대기 광학적 현상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실제 관찰을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월별 분포에서 보여주는 현대 관측에서의 특징과의 연관성은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 하지만 연도별 분포에서 보여주는 비연속성은 실제로 황사 현상의 발생이 비연속적이었음을 단정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비록 지난 1세기 동안에 관측된 황사 현상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수집된 기록들의 정보만으로 명백한 근거를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
향후 황사 현상과 관련하여 더 많은 사료를 통해 기록을 수집하고 자료의 축적이 이루어진다면 현대 기상학적 관점에서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특히 황사로 인한 간접적인 영향을 농업 기상학과 기후학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면, 과거의 기록은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재이의 관점에 관한 논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시대적 관점에서 역사 기록을 바라보고 재이의 관점을 고려하여 역사 기록에 대한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면 그만큼 충분한 자료 검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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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APPENDIX
The Asian dust data acquired from historical books in Korea. The first column is the sequence number (N) according date of data recorded in historical books. The total number of data collected was 290 records. Column 2 is the kingdoms (C) of Korean chronicles. Here, SL is Silla, GG is Goguryeo, BJ is Baekjae, GR is Goryeo, and JS is Joseon. Column 3 is the lunar date (LD) of the collected records (YYYY MM DD). Here, YYYY is year, MM is month (*MM is leap month), DD is day. Column 4 is the solar date (SD). I converted the lunar date of the collected records to the solar date. The last column is the corresponding number of the words (W) shown in Tabl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