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eting for the Responsibility of the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Program
Currently, Korea is developing a Cheollian follow-on satellite program, named as Geostationary Korea Multipurpose Satellite 2 (GK-2), which consists of two satellites. One satellite (GK-2A) is dedicated to the meterological mission, while the second one (GK-2B) hosts two main payloads for the ocean and environmental application. As GK-2A is dedicated to the meteorological mission unlike Cheollian, there have been discussions on the possibility of transferring the responsibilities of the GK-2A program to the Kore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To help resolve any consumptive disputes or to find an efficient way for the GK-2A program, the events happened after the successful launch of the first meteorological satellite TIROS-1 in the U.S. in April 1960 are investigated. With the successful demonstration of usefulness of TIROS-1 for the meteorological applications, organizations such as the Weather Bureau and the Department of Defense, responsible for the real time application of the TIROS 1 data, strongly requested for an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program which resulted in the plan for the National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System (NOMSS). The plan was strongly supported by Kennedy Adminstration and was put forwarded for the new program under the responsibility of Weather Bureau to the Congress. However, the responsible Committee on Science and Aeronautics sided with NASA and requested major revision of the responsibility. Due to many unfavorable conditions, Weather Bureau accepted the requests and signed with NASA on the agreement for the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However, with the delay of Nimbus satellite which is planned to be used for the prototype of the operational satellite and changes of the unfavorable situations, the Weather Bureau could draw a second agreement with NASA. The new agreement reflected most propositions requested by the Weather Bureau for the NOMSS plan. Until now the second agreement is regarded as the basic principles for the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program in the U.S. This study investigates the backgrounds and processes of the second agreement and its implications for the GK-2 program.
Keywords:
National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system, agreement between the weather bureau and NASA, TIROS-1, geostationary Korea multipurpose satellite1. 서 론
1960년 4월 1일, 세계 최초의 기상전용 실험위성이었던 TIROS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영상제공 및 활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상위성의 활용성에 대한 우려가 일시에 불식되었다(Wexler and Johnson, 1961; Rao, 2001). 강력한 열대저기압에 동반된 대규모 구름, 토네이도를 동반한 뇌우 구름, 적도지역의 전형적인 구름, 중위도 저압대에 동반된 전선성 구름 등, 전 지구적인 구름패턴의 분포가 위성영상을 통해 한 눈에 파악되었다. 또한, 이들 초기영상으로부터 극지방의 빙하와 육상의 적설지역 같은 다양한 지표면 현상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제트기류 및 이에 동반된 습윤역과 건조역 같은 현상도 한 장의 영상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이전까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았던 중위도 저압대의 밴드형 구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Fritz and Wexler, 1960; Wexler and Fritz, 1960). 이들 중 가장 주목 받았던 성과는 이전까지는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였던 해상에서 발달하는 열대저기압의 조기관측이었다. 이에 따라 기상현업 업무를 수행하던 당시의 Weather Bureau에서는 위성영상을 현업에 활용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하였고, 이를 위해 해결해야만 할 두 가지의 중요한 이슈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기상위성을 통해 생산된 영상을 신속하게 수신하여 이를 처리, 분석, 및 분배하는 작업에 관한 것으로 당시에 적용되었던 위성체 기술 및 자료처리체계와 관련된 문제였다. 위성체 기술의 경우에는 우주에서 위성의 자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한 기술이 회전안정화 방식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회전하는 위성체와 촬영하는 카메라를 정확하게 동기화 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촬영된 영상이 지구상의 어느 지점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Strod, 1960; Rao, 2001). 자료처리체계의 경우에는, 생산된 영상을 Weather Bureau 시설이 아닌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stration) 시설에서 원시자료를 수신하여 영상을 만들고 이를 분석하고 분석된 영상을 Weather Bureau에 전송하였기 때문에 최종 사용자에게 도달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였다(Rao, 2001). Weather Bureau는 이러한 문제를 최대한 신속하게 해결해 줄 것을 NASA에게 요청하였고, 당시 NASA의 청장이었던 Glennan까지도 이를 약속하였지만, 생산된 영상자료의 품질을 높여야 했을 뿐 아니라 처리해야 할 분량도 많았기 때문에 TIROS 10호에 이르러서야 원하는 시간에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Hill, 1991; Davis, 2011). 문제해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기관인 NASA의 책임자가 기상위성의 현업활용을 위한 기술개발을 약속함으로써 현업용 기상위성 개발의 중요한 단초가 마련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중요한 이슈는, 위성영상의 활용성이 입증되고 그 중요성이 증가되면서 위성을 이용한 지속적인 영상 생산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으며(Wexler and Johnson, 1960; Chapman, 1967), 이를 위해서는 임무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업용 기상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 개발되었던 TIROS 위성의 평균 수명이 6개월에서 1년 정도에 불과한 점이었다. 따라서 임무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성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과 지속적으로 위성을 개발하여 발사하는 계획이 필요하였다. 위성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위성에 탑재되는 부품과 센서를 2중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TIROS의 경우에는 이를 수용하기에는 위성체의 부피와 가용중량이 허용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TIROS개발계획에는 위성을 짧은 기간에 개발하여 연속적으로 발사하는 일정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임무수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단속적인 연구 개발용 위성의 발사는 예상치 못한 상황(예를 들어 로켓의 실패, 위성체의 오작동 등)이 발생할 경우에는 자료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업 운영기관에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게 요구되었다.
이와 같은 이슈에 대한 접근방법이 현업부서(Weather Bureau와 국방부)와 연구개발부서(NASA) 간에 차이가 있었고, 이에 따라 현업용 기상위성 전반에 대한 논란과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Weather Bureau, NASA, 국방부, 의회, 예산당국 등)가 개입하였고, 그 결과로 현재의 현업용 기상위성 사업 체계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즉, 최초로 발사된 TIROS는 연구개발용이었으므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자료생산이 보장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현업 기상업무를 수행하던 국방부와 Weather Bureau의 최대 관심사는 기상위성의 연속성 확보였다. 반면, 당시 Weather Bureau와 국방부의 요구사항에 따라 현업용으로 개발되던 Nimbus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던 NASA의 경우에는 현업 목적보다는 기술발전과 시험 목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Nimbus 프로그램 자체가 NASA 내부에서 기술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NASA, 2004). 이에 따라 현업기관과 연구개발기관간의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였고, 우주개발 분야의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최종 사용자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Weather Bureau가 궁극적으로는 주도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Weather Bureau와 NASA 간에는 두 번에 걸친 합의 과정이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현업용 기상위성 프로그램 추진체계가 확립되었다. 따라서 이 과정들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의 현업용 기상위성 추진체계 확립에 중요한 시사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초의 기상위성이 발사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이루어졌던 정책수립과정이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흥미로운 주제가 되어 기상위성의 초기 역사에 대해 정치학자에 의한 연구도 있었는데, 그 결과 중의 하나가 Chapman (1967)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Chapman은 가용한 문헌의 조사와 분석 뿐 아니라 정책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이들의 증언을 기록함으로써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Chapman의 논문과 1967년 이후에 발간되거나 비밀 해제된 문건들을 중점적으로 현업용 기상위성의 탄생과정에서 있었던 과정을 정리 및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초기 개발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NASA의 탄생과 Weather Bureau의 위성전담 조직 생성과 발전에 대해서 2장에서 간단히 소개하였다. 3장에서는 두 조직 사이에 이루어진 현업용 기상위성 프로그램에 대한 합의 사항을 소개하였는데, 1차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주요내용, 1차 합의 실패 이후의 새로운 2차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분석하고, 2차 합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종합 정리하여 우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4장에서 논문을 요약 정리하고자 한다.
2. 기상위성 담당 조직의 탄생
현재 미국에서 기상위성과 관련된 정부조직은 NASA와 NOAA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stration; Weather Bureau가 발전하여 만들어진 현재의 조직) 산하의 NESDIS (National Environmental Satellite Data and Information Service)가 대표적이다(국방부의 군사용기상위성에 대해서는 이후에 따로 다루고자 한다). 이들 조직은 미국 우주프로그램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이들 조직의 탄생과 발전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2.1 NASA의 탄생
1957년 10월 1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미국뿐 아니라 서방세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미국은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였다(Ahn, 2012). 우선, 의회에서는 이 “재앙”에 대응하기 위해 그 해 11월부터 국방위원회 산하 전쟁대비조사 소위원회(Preparedness Investigation Subcommittee)에서 범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할 장기적인 위성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1958년 1월에 만들어진 조사결과보고서는 모두 17개의 권고안을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국가적 우주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전담기관의 필요성이 포함되었다(U.S. Congress, 1958). 이 기관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는 국방부에 존재하는 우주관련 조직들을 강화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민간조직을 신설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국방부가 전담기관을 주도할 경우 과학적 프로그램의 축소를 우려하면서 새로운 민간조직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Kraemer, 1995).
뒤 이어 구성된 특별위원회들[상원의 우주·항공특별위원회(Special Committee on Space and Aeronautics)와 하원의 항공·우주 탐사 특별위원회(Select Committee on Astronautics and Space Exploration)]에서도 스푸트니크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들 위원회에서도 우주개발을 전담할 수 있는 민간조직을 설립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공화당 출신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정부 비대화를 막는다는 측면에서 신설조직을 반대하였지만, 특단의 조치를 원하는 전반적인 여론에 밀려 대통령과학자문위원회(President Science Advisory Committee; PSAC)를 통해 전담조직에 대한 (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학자문위원회도 전쟁대비조사 소위원회에서 제시한 두 개의 방안을 고려하였으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가안보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조직의 신설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당시 설립이 진행되고 있던 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 그 책임을 맡기는 제 3안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Kraemer, 1995).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우주개발 관련 전문 인력과 예산이 육, 해, 공군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묶어 하나의 조직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었다. 그러나 우주분야에서 미국이 가진 지도력을 나타내는 것은 이를 민간에서 공개적으로 증빙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비대해진 군부와 이에 딸린 군수산업체에 새로운 거대사업을 맡기는 것을 꺼려한 점도 자연스럽게 민간조직을 신설하는 정부(안)을 만들도록 하였다(Rosholt, 1966; Kraemer, 1995).
의회의 심의과정에서는 민간부분의 국가우주개발을 전담할 새로운 조직인 NASA의 설립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국방부와 NASA의 역할관계를 포함한 다수의 세부적인 논란거리가 존재하였다. 예를 들어 정밀영상을 확보하기 위한 위성자료는 적성국의 미사일 정보수집에도 이용될 수 있지만, 지도 제작이나 국토관리와 같은 민간분야의 활동에도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국방부의 책임으로 할 것인지, 신설되는 NASA의 책임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현재에도 민군 겸용 기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 사용자들이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식으로 정리됨). 역으로 허블 망원경은 우주를 관측할 경우에는 우주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훌륭한 민간기술이지만, 방향을 반대로 돌려 지구를 관측하면 고해상도 영상을 제공하는 첩보위성이 되기 때문에, 군사용과 민간용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 하였다. 유인우주비행, 발사체 개발, 그리고 통신 및 기상과 같은 위성활용 부분 등에서도 민과 군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론적으로 의회는 민군 모두에게 각자의 활동영역을 보장하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면서 세부적인 프로그램 분리는 두 조직이 합의하여 결정하도록 하였다. 대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정과 상호간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위원장이 되는 국가항공우주위원회((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Council; NASC)를 설립하도록 법안에 명시하였다.
1958년 7월 29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ct of 1958”이라 불리는 최초의 우주법에 서명하였다. 이 법에서는 미국의 우주활동은 “전 인류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평화적 활동을 추구한다”라고 명시하여, 우주가 육지, 바다, 하늘에 이은 4번째 전쟁터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특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주변상황과 의회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지만, 여 전히 소련과의 우주전쟁을 시작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우주법에 서명한 이후 과학보좌관, 예산국, NASA, 그리고 국방부 사이의 협의를 통해 유인 우주비행, 기상, 수동형 통신, 그리고 과학 분야를 NASA에, 능동형 통신 및 첩보는 국방부에 할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NASA는 NRL (Naval Research Laboratory)로부터는 Vanguard 프로그램을, ABMA (Army Ballistic Missile Agency)로부터 Explorer 등의 프로젝트를, 육군을 지원하던 JPL (Jet Propulsion Laboratory)과 공군으로부터 로켓 및 위성개발 프로젝트를 인수받았다. 추가적으로 국방부로부터 1억 2천여만 불의 우주관련 예산을 넘겨받게 되었으며, 1958년 10 월 1일에는 예산 1억 불, 직원 수 8천 명 조직의 NACA를 중심으로 정식으로 발족하여 본격적인 미국의 우주개발이 시작되었다(Kraemer, 1995).
한편 NASA의 전신인 NACA는 1915년 의회가 항공과 관련된 정부의 모든 연구개발 업무를 관장하도록 법제화하면서 설립되었다. 대부분의 연구개발 활동들이 공무원 연구원들이 주축이 된 정부연구소[핵심 연구시설은 1917년에 세워진 랭리(Langley) 항공연구소, 1939년에 설립된 에임스 항공연구소, 그리고 1940년의 루이스 항공추진 연구소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시험시실이 캘리포니아 뮤록 드라이 레이크(Muroc Dry Lake)와 버지니아 왈롭스 아일랜드에 있었다] 내에서 이루어지면서 첨단 기초기술들이 축적되었고, 강한 연구마인드를 가진 NACA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라이트 형제, 두리틀(Doolittle), 린드버그(Lindbergh)등이 초기의 NACA 직원들이었으며, 항공우주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그 결과로 16,000건이 넘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였고, 최초 및 최대의 풍동실험시설, 최초의 초음속 돌파 등, 미국의 우주항공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기반기술들을 개척하였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 연구개발에 초점을 둔 NACA의 문화가 NASA의 설립과 함께 온전히 전수될 수 있었다.
2.2 Weather Bureau의 기상위성 프로그램 탄생
위성을 이용한 기상관측을 제안한 첫 논문(Wexler, 1954)이 1954년에 발표된 이후 뚜렷한 움직임이 없던 Weather Bureau에서도 TIROS 위성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위성업무에 대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Explorer 1호가 1958년 1월에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당시 Weather Bureau의 책임자였던 Reichelderfer(1938년부터 1963년까지 Weather Bureau의 책임자)는 본격적인 위성기상 연구를 위한 특별 명령을 내렸다. 그는 1958년 3월 기상연구국(Director of Meteorological Research; 책임자는 Dr. H. Wexler) 산하에 Fritz 박사를 책임자로 하는 “기상위성연구단(Meteorological Satellite Research Unit)”이라는 특수 팀을 만들도록 지시하였으며(Davis, 2011), 이팀에 “장비개발”, “연구”, “위성통신”을 담당하는 부서를 두도록 하였다(Rao, 2001). 이에 Weather Bureau는 여러 부서에서 차출 받은 5명을 중심으로 기상위성에 대한 준비 작업을 공식적으로 착수하였다(Rao, 2001; 기상청이 통신해양기상위성을 준비하면서 시작한 기획단이 5명으로 출발했던 것과 우연한 일치).
이후 1960년에 들어서면서는 이 연구단의 인원도 증가하고, 곧 있을 TIROS 발사를 위한 준비가 본격화되면서 업무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당시에는 TIROS가 연구개발용 위성이었기 때문에 원시자료의 수신이 NASA 시설에서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따라서 Weather Bureau에서는 위성영상의 활용을 위해 전담직원을 이 시설에 파견하여 위성영상을 분석하고, 분석된 구름정보를 Weather Bureau에 보내는 방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이 시설에 파견할 직원들을 차출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조직이 자연스럽게 증가될 필요가 있었다. 그해 6월 30일에는 그 이름을 “기상위성실험실(Meteorological Satellite Laboratory)”로 바꾸고 인원도 40명으로 충원하면서, 본격적인 위성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Rao, 2001). 이후, TIROS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Weather Bureau의 직원들을 NASA의 수신국에 파견하고, 원시영상에서 만들어지는 구름영상분석도(nepanalysis) 생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현업용 기상위성 개발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인원도 80명으로 증가되었다(U.S. Congress, 1961). 1961년 9월에는 의회에서 현업용 기상위성 개발을 위한 예산을 최초로 Weather Bureau에 배정하였고, 이에 따라 1962년에는 본격적인 위성분야 활동을 위해 “기상위성실험실”은 Weather Bureau의 정식조직인 “기상위성부(Meteorological Satellite Activities)”로 확대 개편되었다. 첫 기상전용위성이 발사된 지 18개월만에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온전한 조직이 마련된 것이었다.
기상위성부의 초대 책임자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체계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Singer 박사였다. 그는 메릴랜드 대학교 물리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1950년대부터 지구관측위성을 이용한 과학관측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우주분야의 전문가였다. 1962년 6월 1일 기상위성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Singer 박사는 국회가 법으로 정해준 기상위성부의 임무와 배정된 예산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였다(Singer 박사의 메모, Rao, 2001). 같은 메모에서 기상위성부는 앞으로 위성과 로켓을 이용한 기상업무 지원에 관한 요구사항 발굴 및 기술개발, 대학과의 협력을 통한 인력 및 기술개발, 민간 기업 육성을 통한 자료처리, 표출, 인력관리, 기반시설 확보 등과 같은 중요한 활동들을 추진하도록 제안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주문하였다. 또한, 기상위성부의 활동을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그는 기상위성부의 공격적인 업무추진을 주문하면서 NASA와의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을 이끌었다. 이어, 현업위성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한 이후인 1963년에는 기상위성의 현업활용이 강조되면서 “기상위성부”가 “국립기상위성센터(National Weather Satellite Center)”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70년대 Weather Bureau가 NOAA로 확대 개편되면서 지금의 이름인 NESDIS (National Environmental Satellite Data and Information Service)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3.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NASA와 Weather Bureau와의 합의
TIROS 1호의 성공적인 발사는 기상위성의 효용성을 확실하게 입증하며 기상위성에 대한 시각과 정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즉, 연구개발용인 TIROS 1호에서 생산된 자료가 기상예보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이 실증되면서 기상위성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현업용 기상위성 개발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연구개발용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위성영상이 제공하는 기상정보에 대한 가치는 인정이 되지만, 이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NASA에서 Weather Bureau로의 신속한 영상 또는 분석 자료의 전달이나 효과적인 자료생산에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구용이었던 TIROS 이후의 위성발사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자료를 위해 현업용 위성의 확보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또한, 당시에 급격하게 발전하던 수치예보 분야의 활용을 위해서는 대기의 3차원적인 연직 온습도 정보 제공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렇지만 가용한 연구개발용 위성은 2차원적인 영상만 제공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새로운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였다.
즉, 우주개발 정책이나 조직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우주개발 초창기부터 현업용 기상위성의 확보와 이를 위한 정책수립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현업용 기상위성 프로그램개발에는 NOAA와 NASA가 각자에게 정해진 역할을 담당하면서 참여하는 구도가 조기에 확립될 수 있었다. NOAA가 개발정책, 예산, 일정, 운용, 지상국 개발 및 운영 등과 같은 현업용 기상위성의 전반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NASA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우주시스템의 획득, 발사체 선정 및 발사 서비스, 궤도시험, 기술지원 등을 책임지고 있다. 즉, 현업용 기상위성의 경우에는 NASA에서 개발하고 발사하여 초기의 궤도시험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후 위성에 대한 권한을 NOAA로 넘겨 NOAA의 주도하에 운용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기상위성 개발에서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이와 같은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두 기관의 책임 분담은 TIROS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이후 여러 차례의 논란을 거치면서,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확립되었다. 이 장에서는 이 과정을 기술하고자 한다(Table 1 참조).
3.1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NOAA와 NASA의 1차합의
역설적이지만,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아이디어는 Weather Bureau가 아닌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1960년 NASA의 예산을 준비하면서 먼저 시작되었다(Chapman, 1967; NASA, 2004). TIROS가 발사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현업용 기상위성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핏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는 국방부에서 TIROS 프로그램을 NASA로 이관하면서 두 기관 사이에 기상분야 활용을 Weather Bureau가 책임지기로 한 이면합의와(Dryden and Johnson, 1959; Chapman, 1967) 2기의 위성만 발사할 계획이었던 TIROS 계획 때문이었다. NASA가 신설되면서 기존 프로그램인 TIROS의 후속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이를 위해 기상분야에서의 광범위한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었다(NASA, 2004).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실험용 위성인 TIROS의 발사 이전부터 현업용 기상위성을 준비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를 위한 계획이 제안되었다(Chapman, 1967; NASA, 2004). 이때 마련된 계획은 2기의 TIROS 이후에,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용 위성인 Nimbus를 개발하여 1961년까지 2기를 발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NASA의 1960년 예산 심의를 위해 1959년 봄에 제출되었으며, 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Nimbus 프로그램은 모두 5기의 위성으로 확대되었고, 운영기간도 1965년까지 확장시키면서 그 책임을 새로 조직된 NASA의 Goddard Space Flight Center (GSFC)에 맡기도록 결정되어 NASA 주도의 본격적인 지구관측용 연구개발위성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NASA, 2004).
다음해인 1960년에는 TIROS의 성공적인 발사 및 활용이 이루어지면서 기상 현업업무에서의 중요성이 확연하게 드러나 실험프로그램을 현업운영시스템으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Weather Bureau와 국방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용 위성을 성급하게 현업용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NASA의 고위급 직원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원활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Chapman, 1967).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당시 Weather Bureau의 책임자였던 Reichelderfer의 제안으로 1960년 10월 항공기상국가조정위원회(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 for Aviation Meteorology) 산하에 현업용기상위성패널(Panel on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NASA, Weather Bureau, 그리고 국방부에서 각각 3명의 대표 및 연방항공청의 1명의 대표)을 구성하여 이 시스템에 대한 권고사항을 마련하도록 하였다(Davis, 2011). 패널에는 개발기관의 대표자보다는 사용자 입장의 대표들이 많았기 때문에 패널의 시작부터 현업용 시스템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1) 모든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 2) 합리적인 비용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현업화, 3) 연구개발의 결과를 최대한 활용, 4) 감당할 수 있는 예산 수준, 그리고 5) 미국의 국가이익을 우선시하지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국제적인 기상분야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등 실제 사용자 중심의 계획마련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POMS, 1961). 약 6개월간의 작업을 거친 뒤인 1961년 4월 12일 이 패널은 미국의 모든 기상위성 요구사항을(민간뿐 아니라 국방용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현업용 기상위성체계인 소위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National Operational Meteorological Satellite System; NOMSS)을 최대한 빨리 개발하도록 공식적으로 권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었다(POMS, 1961).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 보고서에 포함된 주요 내용들로는 3단계에 걸쳐 이루어지게 될 위성시스템, 관측요구사항, 발사체, 지상국, 통신, 자료처리 및 분석 등의 위성운영을 위한 모든 주요 작업일정들이 명시되었다. 당시에 개발되고 있던 Nimbus 위성을 극궤도용 연구개발 및 현업위성으로 활용하면서 1963년 12월까지의 1단계에서는 1기의 Nimbus 위성이 항상 궤도에 존재하도록 하고(모두 5기의 위성발사 계획), 2단계에서는 1기의 현업용과 1기의 백업용을 유지하며(모두 8기의 위성발사), 1966년 1월 이후의 3단계에서는 2기의 현업용 위성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도록 제안하였다(POMS, 1961). 한편, 이 보고서에서는 기상위성의 모든 사용자들이 제기하는 요구사항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정지궤도기상위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실험용 정지궤도기상위성인 Aeros를 2단계(1964년 1월에서 1965년 12월까지)에서 개발하는 내용도 포함하였다. 3단계부터는 1년에 2기의 Aeros를 발사하도록 권고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NASA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예산신청이나 활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 또한, 관측된 영상을 실시간으로 방송하여 지상수신시스템만 갖추면 다른 나라에서도 위성을 활용할 수 있는 “Direct Readout” 시스템은 1단계부터 개발하도록 권고하였다.
한편, 보고서 마련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전체 사업의 관리 및 각 기관별 책임소재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서가 마무리 될 시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도출되었는데, 우선 Weather Bureau가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의 전반적인 관리책임을 가지고, NASA는 위성체 및 발사체의 개발을 관리하도록 권고하였다. 이를 위해 Weather Bureau 산하에 NOMSS 책임자를 두고, 참여기관에서 파견된 직원들로 구성되는 조직을 Weather Bureau 책임자가 이끌도록 하였다. 국방부나 FAA와 같은 다양한 정부기관의 기상분야 요구사항은 부처간조정그룹을 통해 Weather Bureau에서 취합하여 관리하도록 하였고, NASA는 상무부와의 계약을 통해 위성의 개발과 발사, 초기 운영을 책임지도록 권고하였다. 다만, 위성의 관제와 운영, 추적, 그리고 자료수집을 위한 지상국 개발은 NASA가 책임지도록 권고하였지만, 운영에 대해서는 그 주체를 명시하진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자료수신과 관제 백업을 위해 알라스카 페어뱅크스에 추가적인 관제수신국을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포함하였다.
POMS에서 마련한 이 계획은 곧바로 대통령과학자문위원회의 검토를 받아 통과되었으며, 케네디 대통령도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 권고안을 승인하였다. 뒤 이어 케네디 대통령은 아폴로 우주선을 이용한 인간의 달 착륙 계획을 공표하였던 1961년 5월 양원합동 연설회에서 미국의 우주개발 비전을 발표하면서 특별예산을 요청하게 되는데, 여기에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을 위한 Weather Bureau의 예산도 포함하였다. 이에 대해 의회는 7월 25에서 27일까지 3일간 하원의 “과학항공우주위원회(Committee on Science and Aeronautics)” 주관으로 청문회를 개최하였으며, 여기에 Weather Bureau, 국방부, NASA의 책임자들이 각 기관의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당시 과학항공우주위원회 의장이던 브룩스(Brooks)는 Weather Bureau가 국가현업기상위성시스템 사업을 주관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우주개발과 관련되는 모든 소관사항을 본인이 맡고 있던 위원회가 주관해야 한다고 판단하였고 기상위성개발 또한 본인의 소관이라고 판단하였다(U.S. Committee on Science and Technology, 2008). 또한, 민간분야의 우주개발을 총괄하도록 NASA를 신설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역할을 다른 정부기관이 가져가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Weather Bureau가 자신이 의장을 맞고 있는 위원회가 아닌 상무위원회 소속인 점도 이러한 판단에 힘을 보탰다). 반면, Weather Bureau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활용주체가 총괄책임을 가지는 것이 합당하며, 이러한 사업추진 체계가 NASA의 고유권한인 우주분야의 연구개발 권한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여기에다 NASA의 역할증대를 반대할 뿐 아니라, 기상위성의 최종 사용자라는 공감대를 가졌던 국방부도 Weather Bureau의 주장에 힘을 보태면서, 현업용 기상위성의 관리체계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Weather Bureau가 POMS 보고서를 유지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NASA와 과학항공우주위원회는 NASA에 좀 더 많은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추진체계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었다.
바로 뒤 이은 하원의 예산소위원회에서는 추진체계에 대한 논의보다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 요구한 예산의 적정성과 향후 추가로 소요될 예산규모에 대해 집중적인 검토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예산소위원회는 현업용 프로그램은 한번 추진하기로 결정되면 향후 지속적으로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관리 및 추가적인 예산 증가 가능성과 예산 절감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Weather Bureau에서는 지원되는 예산은 기존에 NASA의 연구개발용으로 지원되는 예산에 추가로 지원되는 것으로, 현업용 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며(실제 NASA에는 연구개발용 Nimbus 위성을 개발하기 위한 예산 2천 2백만 달러가 책정되어 집행되고 있었음), 기존의 시설과 장비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예산의 급격한 증가는 없을 것이라면서 의회를 설득하였다(Chapman, 1967). 결과적으로 의회에서는 대통령이 요청한 사업항목은 모두 수용하면서 5천 3백만 불의 요구예산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4천 8백만 불의 현업용 기상위성 개발을 위한 예산을 Weather Bureau에 배정하게 되었다. Weather Bureau에 배정된 대부분의 예산이 위성을 개발하기 위해 NASA에 재배정되는 예산이었지만,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최초의 예산이 Weather Bureau의 예산으로 책정되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예산을 Weather Bureau에 배정하기로 예산소위원회에서 결정한 후인 10월, 하원 과학·항공우주위원회의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라 NASA와 Weather Bureau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려졌다(U.S. Congress, 1961). 위원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상위성의 중요성은 인지 하면서도 현업용 기상위성의 전반적인 책임을 Weather Bureau에 맡기는 것을 우려하였다. 이에 따라 위원회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조사했던 내용은 현업용 기상위성의 관리체계와 예산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위원회에서는 “NASA가 비군사목적의 연구개발용 프로그램뿐 아니라 현업용 위성프로그램에 대한 책임도 가진다”라고 우주법을 해석하였기 때문에(U.S. Congress, 1961), 우주개발 전담기관인 NASA가 역할에 걸맞게 위성체의 개발, 발사, 지상국 개발과 관제를 맞도록 하고, Weather Bureau에서는 요구사항, 자료처리 및 분배에 대한 책임을 가지도록 제안하였다. 예산구조의 경우에는 당시 추가되는 예산이 기존의 Weather Bureau 예산에(당시 6천만 달러 정도) 거의 육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위성의 개발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추가예산 등이 발생할 경우 Weather Bureau에서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를 우려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보고서에서는 연구개발에 관한 예산은 NASA에 따로 배정하고, 현업운영에 관한 예산은 Weather Bureau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에서는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해서 POMS 보고서보다는 좀 더 NASA의 역할을 중시하는 방안을 주문하였고, 두 기관 사이에 비공식적으로 논의되던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정의하는 합의서를 마련하도록 권고하였다.
이 권고에 따라 두 기관의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1962년 1월 18일에는 상무부 장관과 NASA청장이 Nimbus를 활용한 현업용 기상위성의 개발(Nimbus Operational Satellite; NOS)에 관해 NASA와 Weather Bureau의 임무를 명시한 합의서에 서명하였다(Weather Bureau, 1962). NOS 체계는 모두 9기의 현업용 기상위성인 Nimbus를 개발하여 궤도주기 105분의 태양동기궤도에 운영하는 것으로, 이들 중 초기의 4기는 NASA의 예산으로 확보하되 Weather Bureau에서는 생산되는 자료를 최대한 현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이후의 5기 위성은 Weather Bureau의 예산으로 확보하기로 합의하였다(Weather Bureau, 1962). 또한, 위성의 운영과 관제를 위해 2개의 지상관제국(하나는 알라스카 페어뱅크스에, 다른 하나는 차후에 결정하기로 함)을 Weather Bureau의 예산으로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들 지상국에서 처리된 자료는 마이크로파 통신을 통해 GSFC와 Weather Bureau로 전송할 계획이었다.
Table 2는 이때 서명된 합의서에 나타난 두 기관의 임무를 요약한 것으로 POMS 보고서에서 권고한 Weather Bureau의 역할보다는 하원 과학항공우주위원회에서 권고한 안에 좀 더 가깝게 정리되었다. 즉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요구사항, 자료처리, 분석, 저장, 연구 등은 Weather Bureau의 책임으로 하되, 개발과 관련된 대부분의 책임은 NASA에 두도록 하여, 나름대로 개발기관과 활용기관의 역할과 임무를 구분하였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관리책임(즉, 예산과 일정의 결정, 현업용 이전에 만들어지는 연구개발용 Nimbus에 대해서는 NASA 외에는 아무도 관여하지 못하는 문제 등) 및 위성의 설계책임을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정하지 못한 어정쩡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총괄책임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이후의 사업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정지연과 같은 부분에서 발생한 논란을 쉽게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Weather Bureau의 입장에서는 POMS에서 제안한 역할분담보다는 상당히 축소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 NASA가 가졌던 규모, 재능,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와 하원 과학항공우주위원회의 강력한 지원에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Chapman, 1967). 특히 상무부와 Weather Bureau 내에서 NASA에 대응할 수 있는 우주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고위급 관리가 없었다는 점도 개발기관 주도의 합의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3.2 NASA와 Weather Bureau와의 2차 합의
1962년 1월의 1차 합의를 통해 Weather Bureau와 NASA 사이에 발생하였던 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현업용 기상위성으로 활용하기 위한 Nimbus의 발사가 지연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수면위로 재부상하게 되었다.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해당사자 간의 논리싸움이 벌어지면서 잠정적으로 합의되었던 이슈들마저 재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에는 Weather Bureau와 국방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NASA가 한발 양보한 2차 합의에 이르게 되는데, 이번 절에서는 이 과정을 다루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Weather Bureau와 NASA사이의 현업기상위성에 대한 책임과 권한에 관한 논란이 NASA에서 개발하던 Nimbus 위성이 추가적으로 지연되면서 우주개발 분야에서는 초보자에 불과하였던 Weather Bureau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정찰위성과 군의 전술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임시방편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군사용 기상위성인 DMSP (Defense Meteorological Satellite Program) 사업이 영구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도 하는데, 이 프로그램이 Weather Bureau와 NASA 사이의 주도권 다툼에서 무게의 추를 움직이게 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Nimbus 시리즈는 순수 연구개발용 위성으로 자리 잡아 이후의 수많은 지구관측위성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개발에 활용되었다. 한편 극궤도 위성의 성공적인 개발에 이어 정지궤도 기상위성의 개발을 위한 ATS(Advanced Test Satellite) 프로그램도 만들어지게 되면서 초기의 기상위성 개발 정책이 자리 잡게 된 시기였다.
어렵사리 마련되었던 1차 합의서에 두 기관장이 서명한 지 6개월도 되기 전에 예상되었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NASA에서 Nimbus 개발을 위한 계약 및 사양결정이 지연되면서 최초의 Nimbus발사가 원래 계획했던 1962년이 아니라 1963년 중반 이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발표되었다. 일정 지연은 NASA의 성격상 좀 더 많은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고 과학기술적으로 발전된 위성개발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위성체의 설계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탑재센서 요구사항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반면 Weather Bureau와 국방부에서는 TIROS를 대체할 수 있는 개선된 Nimbus 위성이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발사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발사가 지연되면서 위성자료의 공급중단이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자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곧바로 제기되었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의회 청문회가 1962년 8월과 9월에 열리게 되었다(U.S. Congress, 1962). 두 번에 걸친 청문회에서 3개 기관의 뚜렷한 입장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Nimbus 지연에 따른 우려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한 것은 국방부였다. 국방부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국가전체의 현업용 기상위성을 만족시킨다는 NOMSS체계 때문에 군사용 기상위성을 국방부 스스로 개발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오래전부터 불만을 품어오고 있었다. 또한 당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던 정찰용 위성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도 군사용 기상위성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국방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자적인 기상위성을 확보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Hall, 2001). Nimbus 프로그램이 지연되어 NOMSS 프로그램이 지체될수록 독자적인 군사용 기상위성 확보를 추진할 수 있는 당위성도 높아지고 그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국방부로서는 Nimbus프로그램의 문제를 집중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Hall, 2001).
반면, NASA의 입장에서는 Nimbus 프로그램이 기존의 TIROS가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하여 다양한 사용자들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개발되는 최첨단 위성이었기 때문에, 1년 정도의 발사 지연이 훨씬 개선된 성능의 위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에 비해 큰 문제가 아닐 것으로 판단하였다. 가능한 모든 사용자 요구사항을 만족시키면서, 좀 더 나은 기술이 Nimbus에 적용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위성체를 회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구를 바라볼 수 있도록 안정화(소위 말하는 3축 제어 방식)시킴으로써 지구관측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 극궤도 태양동기궤도를 따를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특정한 지역은 특정한 시간에 관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술,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라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의 개발, 당시 급격한 발전을 보이던 수치모델에 활용될 수 있는 연직 온습도 정보를 생산하는 탐측기 개발 등과 같은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이해했던 Weather Bureau는 Nimbus 프로그램의 지연이 NASA의 문제라고 강력하게 제기하지는 않았다(U.S. Congress, 1962). 그렇지만, 다양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Nimbus 위성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도 증가하였다. 또한, 개발이 지연되면서 Nimbus의 개발 비용 및 운영시스템의 운영비용이 원래 의회에 제출되었던 계획에 비해 거의 2배로 증가하였다. 이 비용은 Weather Bureau가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Weather Bureau의 조직 자체가 작고 예산도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급격하게 증가된 운영예산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또한, NASA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통해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언제까지 발사해야만 한다는 요구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기술적인 완성도와 첨단기술 개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NASA는 이와 같은 시급성을 은연중에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었다(Chapman, 1967).
국방부의 강력한 우려표명, Weather Bureau의 증가된 요구사항(현업용 Nimbus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용 Nimbus에 대한 기술과 정보가 필요), 그리고 하원 위원회의 분위기 반전(개발 그룹보다는 사용자 그룹을 더 중요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청문회의 결과 보고서는 1961년의 보고서와는 다른 방향의 권고사항이 제시되었다(U.S. Congress, 1962). 우선 Nimbus 프로그램의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요청하면서, 현업용 위성의 시급성을 NASA에서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당시 연구개발용과 현업용에 대한 최종권한이 분명하지 않은 관리체계를 좀 더 분명히 하고, Weather Bureau에서 제시한 Nimbus 발사 때까지 임시적으로 TIROS 위성을 더 발사하여(현업용 예산으로 Weather Bureau에 배정된 사업비를 활용) 현업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U.S. Congress, 1962). 이에 따라 NASA, 국방부, Weather Bureau는 모두 5기의 임시 TIROS를 추가로 발사하기로 합의하였는데, 3기의 위성은 NASA에서, 2기의 위성은 Weather Bureau에서 그 비용을 분담하기로 하였다(U.S. Congress, 1962). 이로써 Nimbus 프로그램의 지연에 따른 현업용 기상위성의 지연에 대한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는 임시적인 방편이었을 뿐 아니라, 청문회 과정에서 NASA의 우월성이 잠식되었고, 의회에서는 참여하는 기관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존재함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문회의 권고에 따라 NASA와 Weather Bureau는 임시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동시에 1962년 1월에 맺어진 합의서를 갱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재검토 작업에 착수하였다. 1차 합의에서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Weather Bureau는 전환된 분위기를 이용하여 좀 더 많은 권한을 가지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Weather Bureau는 당시까지 느꼈던 불평등을 시정하고자 하는 자세였고, 국방부는 이를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국방부는 군사용 기상위성 DMSP 프로그램의 진척 상황에 대한 정보를 1962년 후반부터 Weather Bureau에 흘리기 시작하여, 필요시 NOS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음을 알리기 시작하였다(Hall, 2001). NASA의 1964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해 1963년 3월에 열린 청문회에서, Weather Bureau의 Singer 박사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핵심은 안정적인 운영이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Nimbus보다 긴 수명을 가지는 위성이 필요하고, 현재 다양한 우주분야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기존의 TIROS를 개선하면 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답변하였다(Chapman, 1967). 또한, 예산 측면에서는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예산이 이미 1962년과 1963년 예산년도에 배정되었으나, 현업용 Nimbus 프로그램이 진행도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배정된 예산이 사용되지도 못하면서 이월금만 쌓여가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하원의 예산결산소위에서는 이를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이후의 현업용 기상예산이 축소되어 배정되는 결과가 나타나 더 이상의 사업지연은 예산 프로그램 자체의 폐기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NASA에서 사용하는 예산이 정확하게 현업용 Nimbus를 위한 것인지, 연구개발용 Nimbus를 위한 것인지를 Weather Bureau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예산관리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미국 사회 전체가 스푸트니크 쇼크에서 벗어나면서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약해지고 있었으며, 최초의 기상위성에 대한 관심도(자료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업 중심으로만 남아 있었지 일반인들의 관심이나 연구자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줄어든 상태였다. 따라서 NASA가 설립될 당시와 같은 적극적인 예산지원이나 우호적인 분위기는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예산부담은 무시하기 어려운 이슈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과학 분야의 일부 연구자와 전문가들은 기상위성을 위한 예산이 대기과학의 다른 분야 예산에 영향을 미치므로 기상위성 프로그램에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어 예산확보는 더욱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Chapman, 1967).
마지막으로, 자료처리와 분배의 측면에서 NASA에서는 수신된 원시자료를 처리하여 관제국이 위성을 통해 직접 최종 사용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반면 Weather Bureau의 입장에서는 모든 자료의 분배 책임을 Wether Bureau가 가지고, 관제국 운영까지도 최종 사용자의 몫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부분을 반드시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Weather Bureau의 주장은 나름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관제국을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NASA의 계약직 직원이었고, 이들의 급여는 Weather Bureau에서 NASA에 넘겨진 예산으로 지원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Weather Bureau에서 직접 채용하여 관제국을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현재 천리안위성의 운영을 위해 기상청에서 항공우주연구원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항공우주연구원은 이 자금으로 계약직 운영요원을 고용하여 천리안위성의 운영에 활용하고 있는 실정과 유사).
이와 같은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NASA와 Weather Bureau 사이에는 실무진들 간의 기술적 토론과 협상이 진행되었고 관리자 차원에서의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으나 결국은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1963년 9월, Weather Bureau는 NASA와 맺은 합의를 깨면서 Nimbus 프로그램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하였다(Chapman, 1967; Rao, 2001). 또한, Weather Bureau는 TIROS를 최소한으로 변형한 위성(당시 개발되고 있던 DMSP 위성의 기본 설계를 활용)을 현업용 기상위성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NASA에 통보하였다. 당시 Weather Bureau는 독자적으로 위성을 개발, 구매, 발사, 운영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과감하게 NASA와의 협력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국방부가 있었다. 국방부는 NASA와 Weather Bureau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Weather Bureau의 목소리가 커지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는 크게 두가지 숨은 이유(물론, 기상위성의 최종 사용자라는 동질의식도 작용하였을 것이지만)에 의한 것이었다. 그 하나는 원래 기상위성의 개발이 국방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Ahn, 2012).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거의 완성되었던 TIROS 프로그램이 NASA가 설립되면서 이관되었고, 그 과실이 온전히 NASA의 것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 국방부는 아쉬움이 많았으며, 이를 다시 복구시키려는 강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찰위성 및 전술적 목적을 위한 기상위성의 수요가 제기되었으며, 국방부 고위관리들은 이러한 수요를 민간부분의 NOMSS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부족함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가능하다면 NOMSS가 해체되어 독자적인 군사용 기상위성을 합법적으로 확보하거나, 최소한 NOMSS에서 군사용 기상위성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자적으로 군사용 기상위성을 운용해야 한다는 합목적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Hall, 2001). 이러한 배경하에 국방부는 Weather Bureau로 하여금 개발기관인 NASA에게 최종 사용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였으며, 필요하다면 국방부가 Weather Bureau의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기술개발, 구매, 발사, 운영 등을 지원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Weather Bureau가 NOS 프로그램에서 발을 빼기로 하면서, 현업용 기상위성 프로그램이 가진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당국 주관의 고위급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Table 3 참조).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듯이, 이 회의에는 이해 당사 기관의 모든 책임자들과 핵심 실무자들이 참석하였으며(Chapman, 1967), 핵심 이슈들에 대한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다. 이들은 Weather Bureau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향후 상대적 우위에서 협상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Weather Bureau가 Nimbus를 포기하면서 NASA는 “왜 사용자가 원하지도 않는 첨단 위성을 개발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뿐 아니라 민간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공군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ASA는 현업용 기상위성과 관련된 연구개발부분에서 Weather Bureau가 간섭하는 것을 막겠다는 이전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하였다. 대신, Nimbus 발사 이전까지는 TIROS를 개선한 위성을 발사하여 임무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선에서 새로운 합의를 이끌고자 하였다. 상무부와 Weather Bureau는 이안을 거부하였고, 협상은 또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다시 한 번 국방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면서(두 기관의 합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국방부는 독자적으로 기상위성을 개발하여 발사해야만 한다는 입장 표명), NASA의 최종적인 양보를 이끌어 내었다.
결론적으로 NASA와 상무부는 개정된 공식적인 합의서(현업용 기상위성 프로그램 사업수행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대한 임무를 정의)를 1964년 1월 30일에 서명하게 된다(Dryden & Hodges, 1964). 본 합의서에서는 NOMSS의 구축과 운영 및 이를 위한 예산 확보는 기본적으로 상무부(Weather Bureau에 책임과 권한을 이관함)의 책임임을 명시함으로써 Weather Bureau가 현업용 기상위성에 관한 총괄적인 책임과 관리(예산 및 일정에 관한 결정 포함) 및 운영을 책임지는 체계가 구축되었다. 반면, NASA는 민간분야의 현업용 기상위성에 요구되는 연구개발은 NASA가 전적으로 책임을 가지는 것으로 명시함으로써 국방부의 개입여지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였다. Table 4는 이 합의서에 포함된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두 기관의 기능 및 관리 측면에서의 권한과 책임을 정리한 것으로, Weather Bureau의 입장에서는 1962년 1월에 맺은 1차 합의에 비해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특히 여기에는 비용과 일정을 Weather Bureau에서 결정하도록 함), 관제수신국의 운영 및 이를 통해 현업용 위성의 운영(위성 자체의 운영은 NASA의 책임으로 암묵적으로 인지되고 있었지만, 이 합의서에는 초기실험을 NASA에서 수행하고 성공되었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Weather Bureau의 지상 관제수신국을 통해서 운영한다고 명시함), 그리고 생산된 자료의 분배에 관한 권한을 분명히 함으로써 최초에 제출되었던 NOMSS 계획의 구도와 더 근접하게 되었다. 또한, 현업용 기상위성의 사업관리 체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위성의 개발단계에서부터 발사, 운영까지 모든 단계에서 Weather Bureau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해서는 확실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NASA의 입장에서는 1962년의 1차 합의에 비해 많은 양보가 있었지만, 합의서 3항에 NOMSS를 위한 기술지원의 책임은 NASA가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국방부의 개입여지를 차단할 수 있었다. 또한, 기본적인 요구예산은 NASA에서 분담하지만, 추가적인 예산책임(예를 들어 연구개발용 위성을 현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추가적인 기술개발 등)을 사용자가 부담하기로 명시하여 현업지원을 위한 활동이 연구개발 활동을 지연시키거나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다. Weather Bureau는 연구개발 부분에서도 많은 권한을 확보하게 되는데, 우선 2차 합의서에는 Weather Bureau에서도 독자적인 예산이 확보된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센서 개발이 가능하도록 명시하였고, 더 나아가 NASA에서 진행되는 기술개발 진행과정에 좀 더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NASA는 NASA와 Weather Bureau에서 각각 2명의 대표와 민간의 기상분야 대표 1명으로 구성되는 조정그룹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또한, 기상위성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관리를 두 기관의 2명을 대표로 구성하고, 책임자들이 공동의장을 맡는 기상위성프로그램검토위원회(Meteorological Satellite Program Review Board)를 구성하여 운영하기로 하였다.
2차 합의에 따라 Nimbus 프로그램은 순수한 연구 개발용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충분한 기술개발이 진행된 이후에 현업용으로 활용하기로 정리되었다. 또한, Nimbus가 활용되기 전까지는 기존의 TIROS 위성을 개선하여 TIROS Operational System(TOS)을 따로 개발하기로 하며,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Weather Bureau에서 제공하기로 결정되었다. 최초의 기상위성 TIROS 1호가 1960년 4월에 성공적으로 발사된 지 4년 만에 현업용 기상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이후 연구개발용 Nimbus 1호가 1964년 8월에 성공적으로 발사되었고(부록 참조), 1966년 2월 3일에는 Nimbus 1호의 기술을 적용한 ESSA(Environmental Sciences Service Administration)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현업용 극궤도 기상위성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되었다(Davis, 2011).
4. 요약 및 결론
여기에서는 최초의 기상위성 TIROS 1호가 발사되면서 그 효용성이 입증되고, 이에 따라 연구개발용 기상위성 프로그램을 현업용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현업운영기관과 연구개발기관 사이의 분란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였다. TIROS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기상위성의 시작이 현업용 기관의 적극적인 요구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기관인 NASA 주도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TIROS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업에서의 활용에는 제약이 많았던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업운영기관인 Weather Bureau에서는 기상위성에 대해 뒤 늦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국가현업용 기상위성시스템 개발 계획이라는 좀 더 현업 친화적인 국가계획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마련된 계획은 케네디 행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Weather Bureau의 새로운 사업으로 발전하여 예산까지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NASA와 의회의 견제로 원래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이어 이미 우주개발에 대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던 NASA와의 주도권 다툼이 발생하였고, 현업용 기상위성의 개발임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온전하게 확보하지는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Weather Bureau는 전체적은 틀을 포기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여 후일을 기약하기로 결정하였다(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NASA와 Weather Bureau와의 1차 합의).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는데, 이는 NASA에서 개발하던 현업용 기상위성을 위한 연구개발용 위성의 발사가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대책마련이 요구되었다. 의회의 중재로 진행된 대책마련을 위한 이해당사자 간의 논의 과정에서 Weather Bureau는 최종사용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목소리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NASA가 설립될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였던 맹목적인 우주개발에 대한 지지는 시간이 가면서 약해졌고, 좀 더 실용적인 프로그램이 힘을 얻던 시기가 되었기에 최종 사용자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경쟁자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국방부의 노림(독자적인 군사용 기상위성을 확보하려는점과 NASA에 기술력을 의존하지 않겠다는 점)이 맞아 떨어지면서, 우주분야에서 걸음마도 떼지 못했던 사용자 기관인 Weather Bureau가 과감하게 NASA와의 결별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가 원하지도 않는 위성을 개발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NASA는 상황변화를 인지하게 되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민간부분 기상위성을 위한 연구개발 책임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현업용 기상위성에 대한 Weather Bureau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용한 NASA와 Weather Bureau(상무부를 통한) 2차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었다. 이 합의서는 현재까지도 적용되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기본 추진체계로 활용되고 있다.
2차에 걸친 합의 과정을 통해 Weather Bureau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전반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NASA는 이에 필요한 연구개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또한 NASA는 현업용 기상위성의 개발적인 요소(위성체, 센서, 발사체, 발사, 지상국, 궤도상 시험 등)를 책임지게 되었지만, 모든 활동을 Weather Bureau의 승인하에서 진행해야 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우주분야에서는 걸음마도 배우기 전이었던 Weather Bureau가 우주개발 전담기관인 NASA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크게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는 국방부가 Weather Bureau를 최대한 지원했고 이를 Weather Bureau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NASA와 경쟁관계에 놓여 있던 국방부는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Weather Bureau를 지원했지만, Weather Bureau에서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오히려 국방부가 불리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현업용 기상위성을 최대한 신속하게 확보하겠다는 두 기관의 입장이 맞아 떨어지면서 현업기관과 연구개발기관이라는 경쟁구도가 형성되었고, 국방부와 Weather Bureau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점이 중요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상무부의 Weather Bureau 담당 차관과 Weather Bureau의 위성분야 책임자가 가졌던 전문성과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였다. 현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NASA의 문화가 재협상의 빌미를 제공한 점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우주분야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이 Weather Bureau의 입장에서 NASA를 상대함으로써 NASA가 최종 사용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기 만들었다는 점이 있었다. 이는 국방부와의 공조를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국방부에서 개발하던 기술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Weather Bureau 책임자의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시대상황 변화를 최대한 활용한 상무부와 Weather Bureau의 전략이 주효하였다. 맹목적 우주개발에서 실용적 우주개발로 그 합목적성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산문제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NASA를 압박함으로써, NASA의 양보를 좀 더 손쉽게 얻어낼 수 있었던 점도 2차 합의를 이끌어낸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로 국방부도 임시로 진행하고 있었던 군사용 기상위성을 정식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다음에는 군사용 기상위성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Acknowledgments
논문의 완성도와 정확성을 높여준 두 분의 심사위원에게 감사드립니다. 본 연구는 기상청 기상위성센터 “정지궤도기상위성 기상자료처리기술 개발” 사업 및 환경부의 “Eco Innovation Program of KEITI(2012000160002)” 사업의 일부 지원으로 수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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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ndix
부록: Earth Observation Sensors Carried by NASA Satellites, 1960~1978
Key to sensor acronyms:
APT - Automatic Picture Transmission TV
AVCS - Advanced Vidicon Camera System
AVHRR - Advanced Very High Resolution Radiometer
BUV - Backscatter Ultraviolet Spectrometer
CZCS - Coastal Zone Color Scanner
DCS - Data Collection System
ERB - Earth Radiation Budget
ESMR - Electronic Scanning Microwave Radiometer
FPR - Flat Plate Radiometer
FWS - Filter Wedge Spectrometer
HB - Heat Budget Instrument
HCMR - Heat Capacity Mapping Radiometer
HRIS - High Resolution Infrared Sounder
HRIR - High Resolution Infrared Radiometer
IDCS - Image Dissector Camera System
IRIS - Infrared Interferometer Spectrometer Radiometer
IRLS - Interrogation, Recording and Location Subsystem
ITPR - Infrared Temperature Profile Radiometer
LIMS - Limb Infrared Monitoring of the Experiment Atmosphere
LRIR - Limb Radiance Infrared Radiometer
MRIR - Medium Resolution Infrared Radiometer
MSS - Multispectral Scanner
MUSE - Monitor of Ultraviolet Solar Energy
NEMS - Nimbus E Microwave Spectrometer
PMR - Pressure Modulated Radiometer
RBV - Return Beam Vidicon Camera
SAM II - Stratosphere Aerosol Measurement
SAMS - Stratospheric and Mesospheric Sounder
SAR - Seasat Synthetic Aperture Radar
SBUV/TOMS - Solar Backscatter Ultraviolet and Total Ozone Mapping Spectrometer
SCAMS - Scanning Microwave Spectrometer
SCMR - Surface Composition Mapping Radiometer
SCR - Selective Chopper Radiometer
SEM - Space Environmental Monitor
SIRS - Satellite Infrared Spectrometer
SMMR - Scanning Multichannel Microwave
SPM - Solar Proton Monitor
SR - Scanning Radiometer
THIR - Temperature Humidity Infrared
T&DR - Tracking and Data Relay
TOVS - TIROS Operational Vertical Sounder
TWERLE - Tropical Wind Energy Reference
VHRR - Very High Resolution Radiometer
VIRR - Visible Infrared Radiometer
VISSR - Visible Infrared Spin-Scan Radiometer
VTPR - Vertical Temperature Profile Radiometer
WEFAX - Weather Facsimile
TV - Television Camer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