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장마’는 진정 형용모순인가?: 장마와 자연종
Abstract
Among the weather conditions on the Korean Peninsula, Changma is a notable phenomenon. This is because substantial amount of the precipit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ends to happen during the Changma season. But there are times when this tendency falls into whims. That's the case when it doesn't rain or rains only little during the Changma season. The Kore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KMA) describes this phenomenon as ‘Dry Changma’ – meaning <Changma without rain>. However, 'Dry Changma' is often regarded as an instance of contradicto in adjecto. Since the general public believe that ‘Changma’ means <a phenomenon of continuous rain for a long time or that rain>. This confusion often leads to distrust in meteorologists. In this paper, we would like to propose a reasonable solution to this conundrum by employing the conceptual resources of contemporary philosophy. First of all, I will make explicit the meaning of ‘Changma’ that the public and meteorologists think of. And then a brief explanation of the concept of natural kinds will be presented and the argument will be made that Changma is a natural kind. Next, we will discuss a view on natural kind terms advanced by Saul Kripke, a renowned philosopher. We will argue that in Kripke’s view, the general public’s thought that ‘Dry Changma’ is contradicto in adjecto is not correct. This will eventually lead to the conclusion that the meteorologist usage of ‘Changma’ is the correct one, which is thereby to be adopted by the public.
Keywords:
Changma, natural kinds, philosophy of science, philosophy of langauge1. 서 론
한반도의 날씨는 대단히 변덕스럽다.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변덕은 강수량에서 찾을 수 있다. 가을부터 다음 해 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은 메말라 있다. 주요 하천이 말라버리는 일도 가끔 일어나며, 산불이 한 차례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는 일조차 있다. 반면 여름의 한반도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탈이다. 여름의 집중 호우 때문에 대부분의 하천은 범람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하천을 개량하는 정부 정책은 정치적 논쟁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고, 그 동향을 예측하기 위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마’다. 장마가 왔기 때문에 하천이 범람한다거나 산사태가 일어날 정도의 막대한 비가 쏟아져 내린다는 보도는 언중이 이해하는 여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장마가 왔다는 보도가 나온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장마가 끝났기 때문에 본격적인 한여름 날씨와 무더위가 이어진다는 식의 신문기사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처럼 장마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장마의 시작은 기상재해의 예방이나 수자원의 확보에 있어 중요하여 유관 기관이나 일반인에게 중요한 예보 요소(Ha et al., 2005)”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형적인 동향이 변덕에 빠질 때다. 기상청이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한 다음에도 막대한 양의 비가 내리는 해가 있었고, 장마가 왔다고 발표한 다음에도 비가 거의 오지 않는 해도 있다. 이런 변덕스러운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기상학계에서는 ‘마른 장마’, ‘장마가 끝난 후에 호우’, ‘가을 장마’ 등의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1 하지만 언중은 이런 표현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른 장마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장마가 도대체 어떻게 (여름이 아닌) 가을에 발생할 수 있는가와 같은 의구심이 언중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구심이 곧잘 기상청의 기상 예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기상학계의 용어 사용에 대한 언중의 의구심을 줄이기 위해 기상청은 그 나름대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 이후 기상청은 장마의 종료를 기상 예보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고 2011년 『장마백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언중과 기상학 전문가의 간극을 좁히고자 시도한 기상학계의 논문이나 기상학과 국어학의 융합을 시도한 논문도 출판되었다(Ryoo, 2001; Ha and Park, 2002; Ha et al., 2005; Seo et al., 2011). 하지만 대중과 기상학계의 의사소통에서 발생하는 혼동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중에게 ‘마른 장마’, ‘가을 장마’, ‘장마가 끝난 후에 호우’라는 표현은 여전히 기상학자들의 말장난처럼 여겨지기 쉽다. 예를 들어 2014년의 경향신문에 실린 김석종의 오피니언 기사를 보자.
장마철인데도 제대로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의 작물이 다말라죽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장마철에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마른 장마’라고 한다. 마른 장마라는 말은 ‘비 오는 달밤’이나 ‘월남 스키부대’만큼이나 모순이고 난센스다.
이는 ‘마른 장마’라는 말을 문학적 역설 정도의 모순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2015년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이근영의 사설에서도 비슷한 논지를 찾을 수 있다.
민간이 느끼는 날씨와 전문가들이 다루는 기상현상의 괴리는 장마라는 말 자체에 들어 있다. 생활용어의 장마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이거나 ‘여름철에 여러 날 비가 내리는 날씨’이다. 기상학자들이 보통명사인 장마를 고유한 기상학적 현상에 준용하다 보니, 마른 장마라는 형용모순의 말부터 봄장마·가을장마 같은 곁가지 말들이 생겨났다.
‘마른 장마’는 정말로 형용모순일까?2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하에서 필자는 왜 ‘마른장마’가 형용모순이 아닌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상학자와 언중 사이의 간극을 해소할 적절한 방안을 찾는데 일조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자는 먼저 1장에서 기상학계에서 ‘장마’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고, 2장에서는 언중들이 ‘장마’를 사용하는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이는 언중에게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밝혀줄 것이다. 3장에서는 언중과 기상학계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한 시도로서 류상범의 선행연구인 Ryoo (2001)을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류상범의 선행연구, 더 나아가서 국어학적 어원 연구를 활용하여 현재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어학적 선행연구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국면에서 필자는 국어학적 연구가 아닌 언어철학, 과학철학의 학술적 자원을 활용하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이런 고려 하에서 4장은 언어철학과 과학철학의 학술적 자원인 자연종 개념 그리고 Kripke (1980)에서 밝혀진 자연종 용어의 특성을 소개할 것이다. 이후 5장에서는 여러 철학적 개념을 통해 ‘장마’라는 언어표현을 분석함으로써 ‘장마’의 의미론적 특성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낼 것이다. ‘장마’의 의미론적 특성을 밝히는 것은 본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 부분이고, 그것은 이후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이 아니라는 논증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2. 기상학계의 ‘장마’ 용법
기상학계는 ‘장마’라는 말을 사용하여 여름 한반도 인근 기상 패턴의 규칙적 진행 과정을 기술해 왔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만큼, 한반도의 여름 강수량은 다른 계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계절 내에서 뚜렷하게 변화한다. “5월 초·중순과 6월 말~7월 초순에 우기를, 5월 말~6월 초순과 7월 말~8월 초순에 건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강수량 분포는 어떤 심층적 원인을 가지고 있을까? 그 원인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정체전선이다. 정체전선의 북상에 따라서 6월 초에는 중국의 메이유와 일본의 바이우가 시작되고, 6월 말에는 우리나라에 장마가 시작된다(KMA, 2011). 그리고 기상학계는 정체전선이 동아시아 몬순(East Asian Monsoon)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체계에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장마는 이 시스템과 관련된 여러 변수들이 특정한 범위 내로 유지될 때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Lee (2000)에 따르면 장마는 “대륙성 한대 기단과 해양성 북태평양 기단 사이의 정체성 한대전선” 상에서 발달한 강수 현상이다.
기상학계는 동아시아 몬순 시스템을 구성하는 다양한 변수들의 변화에 따라 어떤 기상 효과가 일어나는 지를 기술함으로써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된 큰 틀 안에서 매년 일어나는 변이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예를 들어 Seo (2011)는 상당온위 개념을 활용하여 ‘장마’를 한층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시도하였고 Ha et al. (2005)는 유라시아 적설면적 등의 요인을 추가하여 장마에 대한 예측력을 높이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들이 위의 인용문에서 제시된, ‘장마’에 대한 기상학계의 표준적인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장마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장마’란 동아시아 몬순 시스템에서 형성된 정체전선이 초래한 기상현상이라는 표준적 정의 위에서 진행된다(Ha and Park, 2002; Ha et al., 2005; Seo et al., 2011). 물론 장마가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기상학자들 간에 미묘한 이견이 없는 바 아니지만 이하의 논의에서 필자는 그러한 이견은 일단 제쳐두고 앞서 언급한 장마의 표준적 정의에 집중할 것이다.
3. 장마에 대한 일반적 정의와 언중과 기상학계의 괴리에 대한 선행연구
표준국어대사전은 ‘장마’를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로 정의하고, 한글학회 큰사전은 <잇대어 매우 많이 오는 비>로 정의한다.3 이런 고려에서 기상학자 류상범은 ‘장마’의 일반적 정의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라고 결론내린다(Ryoo, 2001). 유사하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장마’를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 주로 6월 말부터 7월 초에 내리는 비>로 정의하고 우리말샘은 ‘장마’를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로 정의한다. 이처럼 ‘장마’에 대한 언중의 정의에는 기상학적 요소들(정체전선, 몬순시스템)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 반면 오직 강우의 시기와 양만이 포함된다. Cho (2011)의 국어학 연구에 따르면 고래로부터 언중은 ‘장마’라는 용어로 <오랫동안 내리는 비>를 의미했고, 꾸준히 그러한 방식으로 ‘장마’를 사용해 왔다.
‘장마’에 대한 기상학적 정의에 이어서 그에 대한 언중의 정의를 간단히 일별했는데, 그 두 정의에 비추어 ‘마른 장마’라는 표현을 두고 언중과 기상학 전문가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기상학자들에게 장마란 정체전선으로 이루어진 기상 현상이다. 따라서 기상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장마의 영향권에 있는지 판정하기 위해서 강우의 시기와 양이 아닌 정체전선의 유무를 확인한다. 그러므로 비가 적거나 전혀내리지 않는 경우에도 한반도에 정체전선이 형성되어 있다면, 한반도는 장마의 영향권에 있는 것이다. 기상학자들에게 ‘마른 장마’가 모순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다. 반면 언중들은 정체전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언중은 오직 강우의 시기와 양만을 고려할 뿐이다. 언중들에게 ‘장마’란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비가 오지 않는 장마’ 혹은 ‘마른 장마’라는 말은 모순에 불과하다.
‘장마’라는 동일한 언어 표현으로 기상학자들은 정체전선으로 형성된 기상 현상을 가리키고 일반 언중은 오랫동안 많이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그 결과 두 용법은 각각 ‘마른 장마’라는 언어표현에 대하여 상반된 판단을 내린다. 그렇다면 두 용법 중에 무엇을 따르는 것이 더 합당한가?
이 난해한 문제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Ryoo (2001)가 있다. 해당 논문에서 저자 류상범은 “일반인과 기상학자 사이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장마의 정의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류상범은 국어학적 어원 연구를 차용한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장마’라는 한국어 단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어학적 연구를 참고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접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어학적 어원 연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장마’의 어원 연구는 그 용어에 대한 언중의 용법에만 관심을 갖는 반면 우리는 ‘장마’에 대한 언중의 용법과 기상학자의 용법 중 무엇이 더 합당한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학적 어원 연구는 언중들이 사용하는 언어 표현의 생성사나 변천사를 다룬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전문가 집단의 언어 사용과 언중의 언어 사용에서 발생하는 간극에 있다. 따라서 언중의 용법만을 고려한 국어학적 어원 연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언중이 ‘장마’를 역사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를 안다고 해서 ‘마른 장마’가 정말로 모순적인지 판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른 장마’의 모순성을 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는 ‘장마’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해야 한다. ‘장마’의 의미론적 특성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 표현의 의미론적 특성에 대한 탐구는 철학의 대표적 연구주제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국어학적 어원 연구가 아닌 철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철학의 광범위한 분야 중에서 언어철학과 과학철학의 연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언어철학의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언어철학적 자원이 의미의 본성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이며, 과학철학의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장마가 과학철학의 주제 중 하나인 자연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4. 자연종과 장마
필자는 이 장에서 과학철학의 한 주제인 자연종 개념을 소개하고, 이어서 장마가 자연종임을 논증할 것이다. 종(kind)은 본성(nature)을 공유하는 덕분에 유사성을 갖는 개체들의 집합(group)으로 정의된다(Macleod, 2016). 그리고 자연종은 말그대로 종 중에서도 자연적인 종을 뜻한다. 그러면 ‘자연적인 종’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종 K가 자연적이라는 것은 K의 구성원들이 인간의 관심이나 행위보다는 자연 세계의 구조를 반영해서 무리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Bird and Tobin, 2018).4 자연 세계에 인간의 관심이나 행위와는 독립적으로 자연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여 무리지어지는 개체들이 있다는 직관은 세계에서 자연종을 골라내는 우리의 근본적인 직관이다. 우리는 이러한 직관을 이용해 물, 금과 같은 화학 물질, 호랑이나 말 같은 생물종, 번개나 태풍 같은 자연 현상을 자연종으로 분류한다.
자연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할 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하나의 용어로 종을 가리키기도 하고 한 종에 속한 개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랑이’이라는 언어 표현은 개체로서 호랑이(a tiger)를 가리키는 언어 표현으로 쓰일 수도 있고 호랑이라는 하나의 종(Felis Tigris)을 가리키기 위해 쓰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필자는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언어 표현이 종을 가리킬 때는 그 표현을 굵은 글씨로 서술할 것이다. 예컨대 종으로서 호랑이를 가리킬 때는 ‘호랑이’라고 서술할 것이다.
다시 자연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로 돌아가보자. 물이 우리의 행위나 관심 때문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물이 존재하는데 우리의 행위나 관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개체로서 물이 물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우리의 관심이나 바람에 있지 않다. 개별 물은 모두 분자구조, 끓는점, 어는점 등의 성질에서 동일하기에 하나의 종에 포함된다. 이처럼 자연종 분류의 기준은 자연 세계, 자연 법칙에 있다. 따라서 자연종의 분류는 “자연 세계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Magnus, 2012). 그리고 자연종이 세계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분류되었다면, 우리는 “자연종 용어를 이용해서 세계의 구조를 가려낸다”고 말할 수도 있다(Magnus, 2012). 이에 반해 연필, 컴퓨터, 유부남, 유권자 등은 자연종이 아니다. 연필, 유부남과 같은 종은 인간의 행위나 관심에 의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5
이처럼 자연종은 자연 세계의 개체들에 대한 분류항(taxonomy)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종을 가리키는 언어표현을 ‘자연종 용어(natural kinds terms)’라고 칭한다. 예를 들어 금은 하나의 자연종이다. 우리는 79번 원자로 이루어진 이 화학물질을 ‘금’이라는 언어표현을 도입해 분류한다. 이때 ‘금’이라는 언어표현이 자연종 용어에 해당한다.
철학자들은 종 K가 자연종이 되기 위한 몇 가지 기준들을 제시하였다. 그 기준들 중 중요한 것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6
(1) 속성 논제: 자연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공통적인(자연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
(2) 귀납 논제: 자연종은 성공적인 귀납 논증을 지지해야 한다.7
(3) 과학 논제: 자연종은 과학적 연구에 적합한 범주이어야 한다.8
(1)을 먼저 살펴보자. 어떤 자연종 K에 속하는 임의의 대상 혹은 현상 a는 K에 속하는 다른 대상 혹은 현상들과 동일한 자연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금에 속하는 개별 금 덩어리들은 각각 모양도 다르고 무게도 다른 개체일 것이다. 하지만 개별금 덩어리들은 모두 원자번호 79번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공통적인 속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이들을 금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엮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개별 금 덩어리들이 공통적 속성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개별 금 덩어리들을 금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분류할 기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2)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성공적인 귀납 논증이란 논증의 전제가 참일 때 결론이 참일 개연성이 충분히 높은 논증을 뜻한다.9 귀납 논증의 한 예는 다음과 같다: 1기압 하에서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 것으로 지금까지 관찰되었다. 따라서 1기압하에서 물은 언제나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 이때 개연성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러나 전제와 반대되는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을수록 그리고 전제에 해당하는 근거가 많이 축적될수록 귀납 논증의 효력은 더 강해진다. 지금까지 관찰된 물과 달리 앞으로 관찰될 물의 끓는점이 섭씨 100도가 아닐 가능성이 낮을수록, 그리고 지금까지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 사례가 많이 관찰되었을수록 이 논증은 더 강한개연성으로 그 결론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공적인 귀납 논증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 조건 중 하나는 귀납 논증의 대상들 간의 유사성에 있다. 그런데 (1)에서 확인했듯이 자연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동일한 자연적 속성을 갖는다. 따라서 자연종은 성공적 귀납 논증을 위한 조건을 만족한다.
마지막으로 (3)에 대해 알아보자. 과학적 연구에 적합하다는 것은 설명과 예측을 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물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물의 분자구조 등을 밝혀내고, 그것은 물의 다양한 화학적 특성들을 설명하고 조건의 변화에 따른 물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장마는 자연종일까? 직관적으로는 장마가 자연종이라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번개나 비 같은 자연적 현상이 인간의 관심이나 행위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장마도 번개나 비와 같은 자연 현상의 일종이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마가 자연종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 자명하다.
이에 더해, 장마는 자연종이기 위한 기준인 (1)-(3)을 만족한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매해 한반도에 닥치는 개별 장마는 새로운 장마이다. 장마가 자연종이라면 (1)에 따라 개별 장마들은 공통적인 자연적 속성을 가져야할 것이다. 우리는 개별 장마들이 공통적인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이미 2장에서 확인하였다. 개별 장마들은 정체전선에 의해서 생긴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따라서 장마는 (1)을 만족한다. 장마는 (2)도 만족한다. 우리는 장마가 상륙했을 때 한반도의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 귀납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것이며 날씨가 습해질 것이다. 장마는 (3)도 만족한다. 장마는 한반도의 기후의 특성을 설명하고 기상을 예보하는 데 있어 유용한 범주이고, 그런 점에서 기상학이라는 과학 분야에 적합한 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마를 자연종으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다.
5.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와 크립키의 견해 그리고 ‘장마’의 의미론
이 장에서 필자는 먼저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소개하고, 아울러 그 견해가 ‘장마’에 대한 언중의 생각을 잘 포착한다는 점을 보일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전통적 견해에 대한 크립키의 비판을 살펴보고, 그러한 비판을 ‘장마’의 경우에 적용할 것이다. 전통적 견해에 대한 Kripke (1980)의 비판을 따를 때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이라는 언중의 생각이 합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마’에 대한 기상학 전문가의 용법을 따르는 것이 합당하며 ‘마른 장마’가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 가지 철학적 개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연성/필연성 개념이 그것이다.
우연성과 필연성은 문장이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된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어떤 문장이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그 문장이 현실적으로 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거짓인 것이 도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어떤 문장이 우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그 문장이 현실에서는 참이지만 거짓인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라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총각’의 의미에 비추어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라는 문장은 거짓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구는 둥글다’는 우연적으로 참인 문장이다. 왜냐하면 비록 현실 세계에서 지구는 둥글지만 지구가 둥글지 않은 세계, 즉 지구가 다른 모양을 지닌 세계가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결혼한 총각’은 모순적인 반면 ‘네모난 지구’는 모순적이지 않다.10
이제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11를 살펴보자.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임의의 자연종 용어 N의 의미는 언중들이 N에 결부시키는 ‘현상적 속성(phenomenological property)’, ‘겉보기 속성(apparent property)’, ‘관찰 가능한 속성(observable property)’이라고 불리는, 사물을 분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속성을 표현하는 복합 기술구(complex descriptive form)에 의해 주어진다(Braun, 2006). 여기서 ‘기술구’란 어떤 대상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언어적 표현을 뜻한다. 가령 ‘대한민국 제 19대 대통령’은 문재인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되는 복합 기술구이다. 유사하게 ‘황갈색에 검은 가로 줄무늬, 하얀색 배를 가진 네 발 달린 육식성 고양이과 동물’은 호랑이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복합 기술구이다.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임의의 자연종 용어 N의 의미는 언중들이 그 N에 결부시킨 현상적 속성을 표현하는 복합 기술구에 의해 확정된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적어도 근대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금’의 의미는 ‘노란 금속’이라는 복합 기술구에 의해 주어졌다. 당시 대다수의 화자들이 ‘금’을 ‘노란 금속’이라는 복합기술구에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전통적 견해에서 이 경우 ‘금은 노란 금속이다’라는 문장은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처럼 그 의미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참이다. 이에 따라 ‘노랗지 않은 금’은 ‘결혼한 총각’처럼 그 의미에 의해서 형용모순이다. 같은 논리가 생물종, 자연 현상에도 적용된다. 호랑이는 <황갈색에 검은 가로 줄무늬, 하얀색 배를 가진 네 발 달린 육식성 고양이과 동물>이고 번개는 <하늘에서 번쩍이는 불꽃>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 견해는 (적어도 근대 과학의 발전 이전의) 사전적 정의와 큰 틀에서는 동일하며, 자연종에 대한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한다.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장마’에 대한 일반인의 상식과도 부합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언중에게 ‘장마’란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를 뜻한다. 언중은 현상적 속성을 표현하는 기술구인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로 ‘장마’의 의미를 규정하고 ‘장마’의 지시체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장마는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이다’는 문장은 그 의미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참인 문장이다. 이는 언중이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기반하여 ‘장마’의 의미를 포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전통적 견해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를 뜻하는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마른 장마’에서 ‘마른’은 <비가 내리지 않음>을 (혹은 <아주 적게 내림>을) 뜻한다. 그러나 <비가 계속해서 내림>이 이미 ‘장마’의 의미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마른’의 의미와 ‘장마’의 의미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둥근 사각형’과 ‘결혼한 총각’이 형용모순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Kripke (1980)는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가 틀렸다고 설파하였다. 크립키에 따르면 자연종 용어의 의미는 현상적 속성, 겉보기 속성 혹은 관찰 가능한 속성을 표현하는 복합 기술구에 의해 특정되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금’은 ‘노란 금속’이라는 복합 기술구와 동의어이다. 이 견해에서 ‘금은 노란 금속이다’라는 문장은 필연적으로 참이어야 한다.
그러나 크립키는 ‘금은 노란 금속이다’라는 문장이 필연적으로 참된 문장이 아닌 우연적으로 참된 문장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노랗지 않은 금이 충분히 상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기 오염이 심각해져서 물체들이 현재와 다른 색깔로 보인다고 상상해보자. 더불어 대기 오염 때문에 금도 우리에게 더 이상 노란색으로 보이지 않고 파랗게 보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금은 우리의 경제에 중요한 요소이니, 금이 노란 금속이 아니게 된 순간 ‘금이 모두 없어져서 우리의 경제가 위기에 닥쳤다!’라고 말할 것인가? 분명 그렇지 않다. 금이 대기오염 때문에 파랗게 보일 때 상식적 화자의 반응은 노란색으로 보이던 금이 파란색으로 보인다는 것이지 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파란 금’이라는 말이 전혀 형용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금’의 의미가 ‘노란 금속’(혹은 여타의 모든 현상적 속성을 표현하는 복합 기술구)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왜냐하면 ‘금’의 의미가 ‘노란 금속’으로 규정된다면 파란 금은 존재할 수도 없고, 파란 금을 상상할 수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12 둥근 사각형이나, 결혼한 총각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들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노란 금속>이 ‘금’의 의미가 아니라는 크립키의 논점은 ‘노란 금속’이 표현하는 속성을 만족하는 대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금’의 지시체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실제로 금과는 다른 화학식 FeS2을 갖는 황철석은 분명 금과 구분되는 물질이지만 그럼에도 금의 현상적, 겉보기 속성을 거의 완벽하게 공유하는 노란 금속이다.13 이는 현상적, 겉보기 속성을 표현하는 기술구를 통하여 ‘금’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다고 본 전통적 견해가 거짓임을 보여준다.
비록 크립키는 임의의 자연종에 속하는 개체들이 현상적, 겉보기 속성을 필연적으로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개체들이 공유하는 모종의 필연적인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에 따르면 그 필연적인 속성이란 경험과학에 의해서 밝혀지는 기저 구조다. 금의 경우 그 필연적인 속성은 금원자들의 원자 구조이다. 가령 금 원자가 79개의 양성자를 갖는다는 사실, 즉 그것의 원자번호가 79라는 사실은 개별적인 금이 필연적으로 공유하는 속성이다. 크립키는 금이 노란 금속이라는 속성을 필연적으로 갖는다는 주장은 거부하지만, 금이 미시물리학에 의해서 밝혀진 특정한 원자 구조를 필연적으로 갖는다는 주장은 긍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비추어 ‘파란 금’이라는 표현은 필연적으로 거짓이 아니지만 ‘79번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금’이라는 표현은 필연적으로 거짓이다.
자연종 용어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 이론이 잘못됐다는 크립키의 논증은 ‘금’ 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같은 생물종 용어, ‘번개’와 같은 자연 현상 용어 등 모든 자연종 용어로 일반화된다. 호랑이가 반드시 네 발달린 황갈색에 검은 가로 줄무늬, 하얀색 배를 가진 육식성 고양이과 동물일 필요는 없다. 호랑이가 세 발만 가질 수도 있다. 황갈색이 아닐 수도 있다. 줄무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호랑이는 여전히 호랑이이다. 따라서 ‘세 발 달린 호랑이’, ‘초록색 호랑이’, ‘민무늬 호랑이’는 형용모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불꽃이 번쩍이지 않아도 전기방전이 발생하는 한 어떤 현상은 번개일 수 있다. 따라서 ‘번쩍이지 않는 번개’도 형용모순이 아니다. 자연종 용어의 의미는 현상적 속성에 의해서 확정되지 않는다.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와 크립키의 견해를 정리해보자.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자연종 용어의 의미는 현상적 속성이다. 예컨대 ‘금’의 의미는 <노란 금속>이다. 어떤 현상적 속성이 자연종 용어의 의미라면, 그 현상적 속성이 자연종 용어로 지시되는 개체들의 필연적인 속성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금은 필연적으로 노란 금속이다. 반면 크립키는 현상적 속성이 자연종 용어의 의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상적 속성은 대상이 우연적으로 갖는 속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크립키는 ‘파란 금’이 형용모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파란 금속도 79번 원자로 이루어진 기저 구조를 갖는다면 금에 속한다.
이 논쟁의 구도를 ‘장마’의 사례에 적용해보자.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전통적 견해는 장마에 대한 언중의 상식을 잘 포착한다. 또한 그것은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이라는 주장에 대한 논거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크립키에 따르면 전통적 견해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크립키의 입장에서 ‘장마 기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린다’는 문장은 우연적으로 참인 문장일 뿐이다. 그 의미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참인 문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것은 단지 장마의 현상적, 겉보기 속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장마’의 의미가 <오랫동안 많이 내리는 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로부터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이 아니라는 결론이 바로 따라 나온다. 왜냐하면 ‘장마’의 의미가 <오랫동안 많이 내리는 비>가 아니라면 ‘마른’이라는 수식어는 ‘장마’와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파란 금’이 형용모순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크립키의 견해에서 금의 필연적인 속성이 그것의 물리적 기저 구조이고 그 구조가 과학에 의해 밝혀지듯이, 장마 역시 어떤 기저 구조를 필연적 속성으로 갖고 그 기저 구조는 경험 과학에 의해서 밝혀진다. 다시 말해, 장마가 자연종인 한 장마의 사례들이 공유하는 모종의 필연적인 기저 구조가 존재하고, 그 구조는 기상학적 탐구에 의해서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상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개별 장마들이 공유하는 필연적인 구조는 바로 정체전선이다. 따라서 ‘정체전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장마’라는 표현은 필연적으로 거짓일 수밖에 없다. 마치 ‘원자번호 79번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금’과 같이 말이다. 이에 더해 정체전선이라는 기저 구조를 갖춘 자연 현상이라면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장마라는 종에 속할 수 있다.
6. 요약 및 결론
자연종 용어의 의미를 해당 용어에 결합된 현상적 속성이라고 보는 자연종 용어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장마’는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를 뜻한다. 전통적 견해를 따랐을 때 ‘마른 장마’는 형용모순이라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크립키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종 용어의 의미는 현상적 속성일 수 없다. 크립키에 따르면 자연종 용어로 지시되는 집합에 속하는 개체들이 현상적 속성을 갖는 것이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크립키는 자연종이 가지는 필연적 속성이 경험과학에 의해서 후험적으로 발견된다고 본다. 크립키의 견해를 장마의 사례에 적용하면 장마의 의미는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가 아니며, ‘마른 장마’가 형용모순의 표현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장마가 갖는 필연적 속성은 강수량이 아닌 정체전선으로 이루어진 기저구조라는 결론도 얻어진다. 자연종 용어에 관해 크립키가 전통적 견해에 제기한 비판은 현대 철학계에서 상당히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14 따라서 크립키의 견해를 따라 ‘마른 장마’에 대한 언중과 기상학 전문가들 사이의 상반된 입장 사이에서 기상학 전문가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더 합당하다.
크립키의 논점은 ‘마른 장마’ 뿐만 아니라 기상학계와 언중 사이에서 논란이 된 여러 표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장마 후 집중 호우’, ‘가을 장마’ 같은 표현이 그 예이다. 비가 오랫동안 많이 내리는 자연 현상이지만 정체전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장마가 아니다. 따라서 ‘장마 후 집중 호우’라는 말도 모순적이지 않다. 또한 정체전선으로 이루어진 자연현상이 여름이 아닌 가을에 상륙했을지라도, 그 자연현상을 ‘장마’라고 부르는 데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7S1A5A2A01023386).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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